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21일(현지시각)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31·왼쪽) 제2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을 제1왕위계승자로 임명하는 칙령을 내렸다. 그동안 왕위 승계 1순위였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58·오른쪽) 내무장관은 모든 지위가 박탈됐다. 2015년 9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 정상회의에 참석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82) 국왕이 21일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31) 부왕세자(제2왕위계승자)를 왕세자(제1왕위계승자)로 임명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1875~1953) 국왕이 숨진 이후 그의 아들들이 돌아가면서 왕위를 승계한 ‘형제 승계’가 앞으로는 ‘부자 승계’로 바뀔지 주목된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21일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부왕세자 겸 국방장관을 왕세자로 임명한다는 칙령을 내렸다고 사우디 국영 <에스피에이>(SPA) 통신이 전했다. 이 통신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부총리직까지 맡게 됐으며 국방장관직도 유지한다고 밝혔다. 살만 국왕의 조카로, 그동안 왕위승계 1순위였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58) 왕세자는 모든 공적 직위가 박탈돼 내부장관직에서도 해임됐다. 그의 아버지인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도 2011년 제1왕위계승자(왕세제)로 책봉됐으나 1년 뒤 사망해, 살만이 2015년 7대 국왕에 올랐다.
<알아라비야> 방송은 “충성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34명 가운데 31명이 제1왕위계승자 교체에 찬성했다”고 전했다. 충성위원회는 왕가의 분파들을 대표하는 이들로 구성되며, 왕위 계승자를 결정한다. 살만 국왕은 사우디 국민들과 왕가에 새 왕세자를 향한 충성서약을 요청했다. 살만이 2015년 1월 즉위한 이후 제1왕위계승자를 바꾼 것은 2015년 4월 이복동생인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72)에 이어 두번째다.
살만이 국왕이 된 뒤 무함마드는 국방장관을 맡아서 예멘 공격을 주도했고,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석유에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 구조 개편 등을 이끌면서 사우디의 실세로 떠올랐다. 때문에 사우디 안팎에서는 무함마드가 살만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살만 국왕도 무함마드를 미국과 러시아 등에 보내 정상들과 만나게 하는 등 후계구도를 구체화했다. 지난 3월 무함마드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무함마드가 왕세자가 되면서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의 관계는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란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강경파다. 지난달 사우디 텔레비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정권의 목표가 무슬림들의 중심지(메카)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사우디 안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전투가 그쪽, 이란 안에서 벌어지게 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로이터>는 무함마드의 왕세자 임명을 “사우디 왕국 리더십의 대격변”이라며 “무함마드의 지지자들은 그가 사우디의 희망찬 미래를 제안하고 있다고 말하는 반면, 반대자들은 그가 경솔하고 경험이 없으며 권력에 굶주려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살만이 국왕에 즉위한 뒤 무함마드가 실권을 장악해 사우디 왕가 내부에서 국왕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던 터라 부자 세습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2015년 가을 사우디의 일부 왕자들은 “살만 국왕이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며 현실적으로 왕의 아들이 왕국을 통치하고 있다”며 이븐 사우드 국왕의 생존해 있는 아들들이 ‘왕실 쿠데타’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우디 왕가의 2세대들이 물러나고 3세대가 전면에 나서면서 왕위 분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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