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반군과의 동맹으로 예멘 내전을 촉발시킨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이 후티 반군과의 동맹을 깨고 사우디에 접근하려다 사망해, 예멘 내전은 더 격화되게 됐다. EPA 연합뉴스
예멘 내전을 촉발시킨 한 당사자인 알리 압둘라 살레(75) 전 대통령이 피살당해 ‘내전의 미래’가 더 어두워졌다. 내전 당사자들이나 개입 세력 사이를 오가던 그가 사망함으로써 싸움은 더 극단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살레는 4일 수도 사나에서 추종 세력과 후티 반군 사이의 총격전 도중에 사망했거나 혹은 체포돼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티 반군과 동맹을 맺었던 살레는 최근 이를 깨고는 현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쪽으로 선회할 의사를 밝혔다. 지난 2일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동맹국들이 예멘 공격을 멈추고 봉쇄를 끝내면 사우디 주도 동맹과 “새로운 장을 넘길”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의 죽음은 사우디 쪽에 가담하려는 데 대한 후티 반군의 응징으로 보인다. 후티 반군 지도자 압둘말릭 알후티는 사우디 주도 동맹의 음모를 분쇄했다고 밝혔다.
살레는 1978년 북예멘 대통령에 오른 이후 두 차례 내전 등 분쟁을 촉발시키거나 화해시킨 중심인물이다. 자신의 편의에 따라 여러 세력과 연대와 배신을 거듭했다. 1990년 남예멘과의 통일을 성사시킨 반면, 현재 내전의 근원인 후티족 탄압을 주도했다. 살레의 명령으로 후티족 지도자가 2004년 암살됐다.
이에 후티 반군은 반란을 일으켜 2011년 ‘아랍의 봄’ 때 살레를 축출하는 데 공헌했다. 이에 따라 당시 부통령이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이 집권했다. 그러나 살레는 다시 권력에 복귀하려고 과거의 적인 후티 반군과 손을 잡아, 이들이 2014년 수도 사나를 점령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시아파인 후티 반군의 득세는 사우디의 개입을 불렀다. 시아파 국가 이란의 영향력이 자국 뒷마당인 예멘에서도 커질 것을 우려한 사우디는 수니파 국가들과 동맹을 조직해 예멘 내전에 본격 개입했다. 내전이 국제전으로 비화된 뒤 살레는 후티 반군 뒤에 숨어서도 사우디 쪽과 협상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아들 아메드 알리를 권력에 참가시키는 협상도 벌여왔다. 하지만 지난 6월 사우디의 새 왕세자로 책봉된 무함마드 빈 살만은 2015년 살레의 아들을 만났을 때 주먹다짐 직전까지 갈 정도로 다툰 것으로 전해졌다.
내전이 교착 상태에 빠진 2016년 말부터 살레와 후티 반군의 동맹은 본격적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는 사우디 쪽으로 더 기울었다. 최근 살레는 후티 반군과 갈라서겠다고 발표했고, 그의 추종 세력이 사나 남부를 장악했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에 대한 ‘혁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후티 반군이 지난 3일부터 사나에서 대대적 공격에 나서 살레를 살해했다. 사우디 주도 동맹은 대대적 공습을 펼쳤으나 살레의 집은 후티 반군에 점령된 것으로 알려졌다.
살레의 사망으로 내전은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살레 추종 세력은 보복을 다짐하고 있고, 현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 역시 내전 개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후티 반군은 살레 세력을 완전히 구축함으로써 사나 일대에 대한 장악력이 강화됐다. 사우디로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어지게 됐다. 군사 개입을 강화할 선택지만 남았지만, 이는 지난 2년 반 동안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살레 쪽이 공격받을 때 사우디의 도움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점도 사우디의 한계를 보여줬다.
살레는 분열을 조장한 인물이었으나, 또한 타협을 중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내전의 양극화가 더 깊어지게 됐다고 <비비시>(BBC)는 평했다.
살레가 촉발한 내전으로 그동안 8670명이 숨지고 4만9960명이 부상당했다고 유엔은 집계했다. 2070만명이 인도적 구호 대상이 되는 등 최대의 식량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콜레라 창궐로 2211명이 숨졌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