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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원정대]‘외국기자는 스파이?’ 쫓겨나며 본 이란

등록 2018-07-12 04:59수정 2018-07-12 18:03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이란 취재 뒷얘기-언론의 자유 164위 나라

5주 기다려 취재비자 받았지만
따로 허가 없이 인터뷰 어려워
대학교는 사전약속 뒤 출입 가능

CNN·BBC 등 비아랍 방송 차단
부패·무능 감추려 언론 통제하나
고위급 경찰 간부로 보이는 이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시장을돌아보고 있다. 이들은 경호를 받으며 한대 뿐인 방송 카메라 앞에서 몇마디 말을 한 뒤 떠났다. 테헤란/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고위급 경찰 간부로 보이는 이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시장을돌아보고 있다. 이들은 경호를 받으며 한대 뿐인 방송 카메라 앞에서 몇마디 말을 한 뒤 떠났다. 테헤란/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프라이드 베타와 렉서스가 함께 굴러다니는 곳. 세계 석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의 자원부국 이란의 수도 테헤란입니다.

이란 자동차 기업 사이파는 1990년대 초반 기아자동차에서 기술과 설비를 도입해 프라이드 베타를 생산했습니다. 한때 ‘이란의 국민차’로 불렸습니다.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한국에선 사라졌지만, 프라이드 베타는 테헤란 시내에선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보다 더 낡은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도 테헤란 공기를 뿌옇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게 다 자동차 수입을 오랫동안 막은 경제제재 탓이라고 합니다.

미국과 그 나라 대통령 트럼프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쏟아질 거로 예상했습니다. 1979년 이슬람혁명 뒤 단교한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었고, 미국의 경제제재가 이란을 옥죄었습니다. 잠시 경제제재가 해제된 틈을 타 벤츠와 푸조 등 유럽산 새 차 맛도 봤는데, 다시 경제제재라니 실망한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말하기를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모살라(이슬람 사원)에 모인 사람들은 거침없이 미국을 성토했지만,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 시장에서 반미 분위기는 예상만큼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 상인은 “촬영이나 녹음 없이 얘기하자”며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또 다른 이는 “당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여기서 듣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보는 눈이 없을 때만 속내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냈습니다.

어디든 따로 허가를 받지 않으면 누구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지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란에서 가장 높다는 밀라드 타워와 테헤란에서 가장 큰 전자상가에선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하다 경비원에게 쫓겨났습니다. 사전에 인터뷰 약속이 없으면 대학교 출입도 할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찾아간 카페에선 옆자리 손님이 ‘기자인 것 같다’고 신고하는 통에 부랴부랴 인터뷰를 접고 나와야 했습니다.

‘이런! 이란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다고 여기까지 힘들게 왔나’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취재비자도 쉽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2주 정도면 발급될 거란 이야기에 입국 날짜를 앞두고 한달 전에 신청했지만, 이란 정부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5주 뒤에야 비자를 내줬습니다. 발목이 잡힌 평화원정대는 요르단에서 일주일을 더 기다렸습니다. (물론 이란 대사관 직원들은 빨리 가고 싶어 하는 평화원정대를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습니다.) 또 외국 기자가 이란에서 취재를 하려면 ‘미디어 에이전시’에 등록을 해야 하고, 하루 200달러 이상의 취재비도 내야 합니다. 미디어 에이전시가 하는 일은 모살라와 시장 등의 취재허가 ‘종이 한장’ 내주는 것뿐입니다.

들어가기도, 취재하기도 어려운 것은 외국 취재진에 깊은 ‘불신’ 때문인 듯했습니다. ‘외국 기자는 스파이’라는 의심도 유구하다고 합니다. 휘발유도 싼 나라에서 왜 오래된 자동차가 굴러다니는지, 서울보다 앞서 아시안게임을 치른 테헤란의 발전은 왜 멈췄는지, 이런 물음에 답하기가 껄끄러울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란 기자들조차 정부 비판을 쉽게 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해 발표하는 ‘2018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이란은 180개국 가운데 164위입니다. (북한은 180위입니다.)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켜면 이집트, 시리아 등에서 오는 아랍어 방송은 수백개 채널이 있지만 미국 <시엔엔>(CNN), 영국 <비비시>(BBC)는 찾을 수 없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텔레그램 등의 접속도 차단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이란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을까요? 한 대학생은 “위성방송을 통해 시엔엔을 본다”고 했습니다. 카페에서 만난 젊은 여성은 “브이피엔(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에스엔에스에 접속할 수 있다. 텔레그램으로 ‘히잡 벗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란의 상황은 어렵습니다. 미국의 일방적인 경제제재가 8월에 재개됩니다. 이란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삶을 지탱시킬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럴수록 자신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감추기 위해 미디어를 통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부족한 이란이 중동의 맹주를 자임하며 다른 아랍국가의 상황에 ‘정당하게’ 개입할 수 있을까요. 언론의 자유가 닫혀 있더라도 이란 젊은이들의 눈과 귀는 이미 열려 있습니다.

테헤란/이완 기자 wani@hani.co.kr

<한겨레>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꾸린 ‘평화원정대’가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를 출발해 석달 넘게 한반도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2명, 사진기자 1명, 동영상 피디(PD) 1명 모두 4명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4만㎞ 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평화원정대의 생생한 소식은 페이스북 페이지(한겨레, 디스커버리한겨레)와 유튜브(한겨레TV), <인터넷한겨레> ‘평화원정대’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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