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젊은이들이 테헤란에 있는 미 대사관을 넘어들어가고 있다. 이슬람 혁명 후 독재자 팔레비 이란 국왕을 지원하던 미국에 대한 분노가 격화된 시점에서 시위대가 미국인 직원 53명을 444일 동안 인질로 붙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39년 전인 1979년 11월4일은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대학생들이 몰려와 점거를 시작한 날이다. 이란 인질 위기로 불린 사태는 444일간 이어져 이란과 미국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39년이 지나서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완전히 복원한다고 밝혔다.
39년 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장악한 이란은 인질 사태를 이용해 이슬람혁명을 공고히 했다. 혁명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한편 반대 세력을 숙청했다.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비난과 고립을 자초했으나, 이는 미국을 악마화해서 이슬람혁명을 굳힌 대가였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당시 이란이 취한 전략을 원용하고 있다. 이란을 악마화해서 새로운 중동 전략을 굳히고, 6일 중간선거를 겨냥한 정치 동원에 이용하고 있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택한 화해보다는 이란의 굴복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 등은 이란의 야망과 개입 때문이라고 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반이란 수니파 친미 동맹으로 이란을 봉쇄하고 굴복시켜 신질서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5일 발효된 이란 제재는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이후 점차적으로 부과해온 제재의 완결판이다. 이란의 주 수입원인 석유의 수출을 봉쇄하고, 금융 등 모든 국제 거래를 차단하는 조처다. 이란의 은행, 석유 수출업, 선박 회사 등과 관련된 이란의 개인과 업체 등 700여개 대상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금융 결제망인 ‘스위트프’에서 이란을 배제시켜 돈줄을 완전히 차단하는 게 목적이다.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개인에게도 미국과의 거래를 봉쇄하는 ‘세컨더리 제재’를 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성명에서 “우리의 목적은 이란 정권에게 명확한 선택을 강제하는 것이다. 파괴적 행위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경제적 재앙의 길로 계속 가느냐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이란 2단계 제재 복원 하루를 앞둔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옛 미 대사관 건물 앞 도로에서 이란인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기를 붙태우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관건은 이란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다. 일단 이란은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결하지도, 협상하지도 않으면서 버티겠다는 전략이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핵협정을 파기하고 제재를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기대한다. 2015년 핵협정을 맺을 때까지 36년이나 제재를 버텨온 이란으로서는 앞으로 2년을 더 버티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때와는 달리 미국의 핵협정 파기를 반대하는 독일·프랑스·영국에다가 러시아와 중국이 이란을 후원하고 있다.
미국도 이번 제재에서 중국·인도·한국·터키·이탈리아·프랑스·일본·아랍에미리트연합 8개국은 한시적 적용 유예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이란과 거래하는 역내 기업들이 제재를 회피할 수 있도록 특수목적법인(SPV)을 설립한다.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은 돈을 특수목적법인에 지급하고, 이란은 여기에 예치된 자금을 신용으로 해 물자를 구입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특수목적법인과 거래하는 기업에도 세컨더리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비치고 있다. 또 짧은 시간이나마 제재 해제를 경험한 시민들과 경제 체제는 이란의 ‘반미 지도부’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의 제재가 전략적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가늠하게 할 첫 시금석은 시리아 내전이다. 미국 관리들은 제재 효과가 나타나면 이란은 시리아에서 철수할 것으로 계산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했다. 이란은 시리아 내전 개입에 160억달러를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으로서는 미국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시리아에서 확보된 영향력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미국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와 싸우지 않는다면, 그들과 이란에서 싸우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의 제재망에서 어느 정도 비켜나 있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그리고 중동에서 미국이 짜려는 신질서를 얼마나 저지할 수 있느냐에 이란 정권의 명운이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