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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아프리카 독립투사에서 독재자로’…무가베 사망

등록 2019-09-06 17:20수정 2019-09-06 20:45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 싱가포르 병원서 사망
백인정권에 맞선 ‘해방투사’에서 ‘기괴한 독재자’로
젊은 부인에 권력승계하려다 2017년 쿠데타로 실각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이 지난 2017년 4월18일 독립 37주년 기념식에서 부인 그레이스에게 키스하고 있다. 6일 사망한 무가베는 아프리카 민족해방 투쟁의 영웅이었으나, 최장기 독재자로도 악명을 남겼다.   AFP 연합뉴스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이 지난 2017년 4월18일 독립 37주년 기념식에서 부인 그레이스에게 키스하고 있다. 6일 사망한 무가베는 아프리카 민족해방 투쟁의 영웅이었으나, 최장기 독재자로도 악명을 남겼다. AFP 연합뉴스
전후 아프리카 민족해방투쟁의 상징이었다가 제 3세계 독재자의 전형이 된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이 사망했다.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이 6일 싱가포르의 한 병원에서 95살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짐바브웨 정부 관리들이 확인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무가베는 1980년부터 37년간 짐바브웨 대통령으로 철권을 휘두르다가 지난 2017년 쿠데타로 실각한 뒤 망명 생활을 해왔다. 무가베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짐바브웨의 전신인 옛 로디지아의 소수 백인 정권에 맞서는 투쟁을 통해 집권한 아프리카의 대표적 민족해방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는 집권 뒤 잇따른 실정을 탄압으로 막으며 집권을 유지해온 대표적인 장기 독재자의 상징이 됐다.

무가베는 지난 1924년 당시 영국이 통치하던 로디지아에서 태어나 가톨릭 교회의 교육을 받으면서 교사로 성장했다. 그가 자란 로디지아는 1965년 이언 스미스 백인 정부가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탈피를 선언했으나, 이는 로디지아의 소수 백인 지배층들이 다수 흑인 주민들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예방 쿠데타였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럽 종주국으로부터의 독립 열풍이 일자, 로디지아의 백인들이 선제적으로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독립을 선포한 것이었다.

무가베는 로디지아의 백인정권에 맞서는 조슈야 응코모의 민족민주당에 가입해 해방투쟁을 벌여왔다. 그는 1964년부터 10년간 투옥됐고, 이 기간에 감옥에서 6개 학위를 취득하는 등 아프리카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74년 출소한 그는 모잠비크에서 이언 스미스 백인정권 타도를 위한 게릴라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백인정권에 맞서는 게릴라투쟁을 벌이는 짐바브웨아프리카연맹-애국전선(ZANU-PF)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고, 그의 투쟁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큰 명성과 존경을 얻었다. 그가 지도한 짐바브웨아프리카연맹-애국전선은 1980년 짐바브웨가 백인통치에서 벗어난 뒤 집권 여당이 됐다.

무가베는 당시 대통령 취임 선서에서 “어제 내가 당신과 적으로 싸웠다면, 오늘 당신은 같은 국가적 이해를 가진 친구이자 동지가 됐다”며 “만약 우리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박해한다면, 우리의 다수 통치는 비인간적 통치가 될 것이다”고 경고하는 등 포용적 통치를 내세웠다.

무가베는 집권 전의 해방투쟁 경력과 취임 때의 이런 신중함으로 아프리카 지도자의 모델로 추앙받았으나, 곧 잔학한 독재자로 추락했다. 집권 초기인 1980년대 그는 자신을 반대하는 짐바브웨아프리카인민연맹을 민병대로 탄압했고, 그 와중에서 소수 민족인 은데벨레족 8천명이 학살되기도 했다.

그는 1992년 첫 부인이 죽자, 비서인 그레이스와 결혼했고, 그레이스는 나중에 그의 후계자로 지명되는 등 무가베를 몰락시킨 원인이 됐다.

그는 백인들이 소유하던 토지의 배분 등 토지개혁을 내걸었으나 헛약속으로 끝났다. 집권당 간부와 그 친인척들이 백인들 소유의 상업작물 농장 토지를 차지하는 데 그쳤고, 대부분의 토지는 여전히 기득권 백인들이 소유했다. 짐바브웨 경제의 버팀목이던 상업작물 농장의 경영이 파괴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짐바브웨 경제는 파탄났다. 100조단위의 짐바브웨 화폐로도 빵 한조각 살 수 없는 극심한 인플레로 짐바브웨 주민들은 남쪽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난민으로 내몰렸다.

무가베는 2000년에 개헌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연장하려다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뒤부터 본격적으로 독재의 길로 나아갔다. 2008년 대선에서 야당인 민주변화운동의 모르간 츠방기라이가 1차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그의 지지자들에 대한 무가베 정권의 폭력으로 그는 출마를 포기했다.

무가베는 말년에 “신만이 자신을 권력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등의 황당한 발언으로 더욱 기괴한 독재자 명성을 얻었다. 그가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려지자, 부인 그레이스가 권력 승계에 나서면서 그의 몰락이 재촉됐다. 사치스러운 생활로 ‘구찌 그레이스’라는 별명을 얻은 그레이스는 부통령 에머슨 음낭가과와 권력투쟁을 벌이다 결국 2017년 군사쿠데타를 불렀다. 군부는 무가베와 부인 그레이스만을 축출시키고, 음낭가과가 정권을 승계했다.

무가베의 사망에 음낭가과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무가베는 “자신의 생을 행방과 인민의 권력 강화에 바친 범아프리카주의자의 상징이었다”며 “우리 국가와 대륙에 대한 그의 공헌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고 추모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민족해방투쟁의 대표적 지도자로 남아있는 남아공의 데스먼드 투투 주교는 이미 오래전에 무가베를 “아프리카 독재자의 희화된 전형”이라고 비판했었다. 무가베를 애도하는 음낭가과 대통령의 트윗에 대한 국민의 반응도 싸늘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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