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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시리아 이어 예멘으로…불길 번지는 중동 세력투쟁

등록 2019-09-15 19:50수정 2019-09-15 21:02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
예멘 후티 반군 “우리 소행” 자처

미 “배후에 이란”…이란 “최대 거짓말”
사우디·미국이 내전 개입 강화하자
이란 주도 중동 시아파 세력 ‘맞불’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석유 생산 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아 대규모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예멘 내전을 둘러싼 중동의 세력투쟁이 다시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으로 대표되는 중동 안팎의 세력들이 시리아 내전에 이어 예멘 내전으로 중동의 패권다툼을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

14일 새벽 사우디의 최대 석유 시설들인 쿠라이스 유전과 아브카이크 정유공장에 대한 드론 공격 직후, 후티 반군 쪽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했다. 후티 반군 대변인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자신들이 운영하는 <마시라 텔레비전>을 통해 10차례의 드론 공격은 “사우디 내에 있는 영예로운 사람들과의 협력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5일 트위터에서 예멘 쪽으로부터 드론 공격의 “증거가 없다”며 “이란은 세계의 에너지 공급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가했다”고 이란의 소행임을 주장했다.

이란 정부는 15일 미국의 주장에 대해 “그런 헛되고 맹목적인 비난과 발언은 이해할 수 없고 의미 없다”고 반박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란 외교부의 압바스 무사비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이란에 대한 미국의) ‘최대 압박’ 정책이 실패하면서 ‘최대 거짓말’로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이번 공격이 누구의 소행이든 중동 정세는 크게 출렁이게 됐다. 후티 반군이 했다면, 비용이 저렴하고도 정교한 드론 기술로 세계 경제에 주름을 줄 수 있는 군사공격력을 갖췄다는 의미를 지닌다. 후티 반군의 역량이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증강됐다는 의미이다.

폼페이오의 주장대로 이란의 소행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란의 영향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핵협정 파기 등 이란 봉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정도가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란이 후원하는 이라크의 민병대가 과거 사우디의 석유 시설에 대한 공격에 책임이 있었다며, 사우디와 미국 관리들은 이번 공격이 이라크나 이란에서 발사된 크루즈 미사일과 연관된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멘 내전은 중동의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여파로 2011년 예멘의 권위주의 통치자 알리 압둘라 살레가 후계자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권력투쟁으로 촉발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역내외 세력이 개입하며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살레 정부의 탄압에 맞서던 북부 산악의 시아파 후티 반군들이 하디 정부의 실정에 반대해 무장봉기했고, 일부 수니파도 이에 가세했다. 후티 반군은 2014년 수도 사나 등 인구 조밀 지역인 남서부를 장악했고, 이 과정에서 살레 전 대통령 쪽도 연대했다.

하디 대통령이 2015년 국외로 망명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자, 사우디는 후티 반군의 득세가 이란의 지원 때문으로 의심하고 아랍에미리트연합 등과 수니파 국가 연합을 결성해 공습 등을 통한 예멘 내전에 개입했다. 사우디 주도 연합군은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병참 및 정보 지원을 받아왔다. 애초 사우디는 몇주 만에 예멘 내전을 종결짓고 철수할 것으로 계산했으나, 4년이 지나고 있다.

사우디한테 예멘은 남부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고,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연결하는 아덴만의 사활적인 안보지대다. 후티 반군이 예멘을 장악할 경우, 사우디는 이란과 같은 시아파 정부인 이라크와 예멘에 의해 남북으로 포위되는 형국이다.

관측통들은 후티 반군에 대한 이란의 지원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실현된 사례로 보고 있다. 후티 반군에 대한 이란의 연계와 지원은 애초 없었는데, 사우디가 개입하자 이란이 주도하는 중동의 시아파 연대도 예멘 내전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후티 반군이 득세하고 사우디와 미국의 개입이 강화되자, 이란을 비롯한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 등 중동의 시아파 연대 세력들도 개입에 나서고 있다.

예멘을 활발한 활동무대로 삼았던 알카에다도 내전 발발로 다시 세력을 회복했고, 반군과 정부군 세력 사이에서도 끝없는 분열이 이어져, 내전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우디 연합군의 봉쇄와 공습으로 민간인 사망자만 최대 7만명으로 추정되고, 인구의 80%인 2400만명이 난민이 됐다. 이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는 사우디에 대한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우디 석유 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예멘 내전은 하디 정부 대 후티 반군이 아니라, 사우디 대 이란 전선의 성격을 더 강화하게 됐다. 이 공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고 밝힌 유엔 총회 개최 며칠 전에 일어나, 대화의 계기를 찾으려던 미-이란 관계는 다시 대치 국면으로 더욱 치닫게 됐다. 시리아 내전이 잦아들자 예멘 내전이 다시 그 자리를 이어받아 중동 역내외 세력들의 이전투구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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