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드론 공격을 받아 파괴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시설 장소. AP 연합뉴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은 이란 소행이라는 주장을 굳히고 있다. 이란을 보복 공격해야 할지 선택에 몰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단 독일·프랑스 등 유럽 동맹국들을 대이란 제재 및 압박 전선으로 끌어모으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 국방부는 18일 기자회견에서 드론과 미사일 잔해들을 분석한 결과 “이 공격은 ‘북쪽’에서 발진됐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이란의 후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인 투르키 말리키 대령은 석유시설을 공격한 무기 잔해들을 보여주며, 이란 소행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모두 18대의 드론과 7발의 미사일이 발사됐으며, 그중에 ‘델타 윙’이라는 이란 무인항공기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말리키 대변인은 “이건 이란 정권과 이란혁명수비대가 민간인과 시설들을 상대로 사용하는 종류의 무기”라고 덧붙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사우디를 방문하기 전 기자들에게 “이는 이란의 공격이다”라며 “정보 당국들도 후티 반군들이 소유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고 매우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에 도착한 뒤에 그는 “(이번 공격은) 전쟁 행위”라고 비난했다. 미국 내에서도 이란 보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회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우군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단호한 대응이 필요한 전쟁 행위”라며 이란 정제시설에 대한 보복공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지난 6월 이란의 미군 무인기 격추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 공격을 취소한 것이 이란에 미국의 나약함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취임 이후 최대 고민의 시간이다. 이란에 대한 보복 공격은 중동분쟁 확산과 석유가격 앙등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공격하기는 아주 쉽다”면서도 “그 비열한 일을 처리하는 데 아직 많은 시간이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어 “궁극적인 선택이 있고, 그보다 덜한 많은 선택이 있다”며 “두고 보자, 우리는 아주 강력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군사행동에 즉각 나서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보복 공격보다는 일단 제재를 강화해 이란을 압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앞서 트럼프는 미 재무부에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실질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48시간 내에 구체적인 제재안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추가 제재안으로 쓸 만한 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럽 동맹국들을 대이란 압박 전선에 다시 끌어모으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국제 핵협정 탈퇴 이후 프랑스·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은 이란 문제를 놓고 미국과 갈등을 노출해왔다. 대이란 압박 동맹을 재구축하면 이란을 고립시키는 명분을 얻고 유리한 협상 지위라는 실리도 챙길 수 있다. 트럼프는 참모들의 반대에도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이란 외교관들의 비자 발행을 허가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사우디에서 “우리는 이란 저지 계획을 개발하는 동맹을 구축하려 한다”며, 미국의 목적은 보복보다는 또다른 공격을 막기 위한 사우디 방위 강화라고 강조했다. 이날 트럼프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전화통화를 한 뒤 영국 총리실은 “국제사회 동반자들의 일치된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서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영국 등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의 경우 이번 사우디 피습을 비난하고 있지만 아직은 이란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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