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가운데)이 22일 테헤란 외곽에 있는 아야톨라 호메이니 묘소 앞에서 열린 이란-이라크 전쟁 39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산유시설에 대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의 배후로 미국이 이란을 지목하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중동 정세가 일단 숨고르기 국면에 들어간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건 다음날 “장전 완료”라는 표현까지 쓰며 이란에 대한 군사 대응 가능성을 강력하게 내비쳤다. 예멘 내전의 한 축인 후티 반군은 사우디에 대한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이란도 미국의 ‘이란 배후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사우디 국방부가 18일 피습 현장에서 수거한 드론과 미사일 파편이 이란산임을 들어 미국의 주장을 거들고, 이날 사우디를 긴급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 사건은 예멘 반군이 아닌 이란의 공격이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전쟁행위”라고 못박으면서 위기감은 극적으로 고조됐다.
그러나 다음날인 19일 폼페이오 장관은 아랍에미리트연합을 방문해 “평화적인 해결을 바란다”며 어조를 낮췄다. 이런 기류는 20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긴급 안보회의에서도 감지됐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에 미군 병력을 파견하고 방공무기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20일 “트럼프가 이제 이란 공습 대신 사우디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멘 내전이 5년을 넘긴 가운데, 21일 후티 반군이 장악한 수도 사나에서 반군 쪽에 가담한 소년 병사들이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서 있다. 사나/AFP 연합뉴스
신문은 미 국방부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에 방공포대와 군용기들을 증파하고 해당 지역에서 작전 중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의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조지프 던포드 미군 합참의장은 “파병 규모는 수천 명이 아니라 수백명 수준의 ‘온건한 배치’가 될 것”이라고 말해, 당장 전쟁을 개시할 의도는 없음을 내비쳤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백악관 안보회의 결정을 “사실상 방어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사우디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에 직접적인 군사 행동을 취할지를 저울질해 왔다. 그는 20일 회의에서도 “1분 안에 보복공격을 명령할 수 있다”면서도, 지금의 자제가 미국의 강력함과 단호함을 보여주는 신호로 보여야 한다고 동시에 큰소리를 쳤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왼쪽)이 20일 백악관에서 미국을 방문한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를 맞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양국 정상회담 직전에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란 국영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등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며 “이는 한 국가에 부과된 최고 수준의 제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재가 시행되면 이란 국민들은 외국산 식료품과 의약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란의 모하마드 자리프 외교장관은 이번 주에 열리는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도착한 직후 “미국의 거듭된 제재는 미국이 이란을 무릎 꿇리려는 ‘최대의 압박’이 실패했음을 뜻하는 절망감의 표현으로, 위험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난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한편,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은 20일 “사우디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단하겠다”며, 교전 상대인 아랍동맹군과 사우디가 이에 호응할 것을 요구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반군 쪽은 “포괄적인 국가 타협안을 타결하기 위해 예멘 전쟁의 모든 당사자가 진지한 협상에 참여할 것으로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엔은 21일 성명을 내어 “전쟁 종식 의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라며 환영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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