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내전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다자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한가운데)를 비롯한 10여개국 정상들이 라운드테이블 회의를 열고 있다. 리비아 내전에 개입해온 서방·아랍의 ‘외세’ 대부분과 내전 당사자인 트리폴리 동·서부 지역의 두 군벌이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2016년 4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최악의 실수가 뭐냐는 질문에 ‘리비아 내전’이라고 답했다. 그는 <폭스뉴스>와의 회견에서 “리비아 개입은 옳은 일이었다”면서도 “그 날 이후를 계획하지 못한 것”은 최악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이 개입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정당했으나, 그 이후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현재의 내전을 초래한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 한달 전에 <애틀랜틱>과의 회견에서 오바마는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개입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비판했다. 특히 그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개입 뒤 “산만해졌다”고 지적해, 리비아 내전을 둘러싼 서방의 불협화음과 대응 실패를 드러냈다.
19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회담이 시작됐으나, 일시적인 휴전조차 지켜지지 못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주최자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휴전이 즉각 존중되도록 담보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회담 첫날 참석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리비아에서 모든 외국 세력의 개입을 종식하고 무기금수를 위한 휴전을 재확인했으나, 그날 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남부에서는 포격이 재개됐다.
2011년 2월 카다피 정권에 대한 봉기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되는 리비아 내전은 중동분쟁의 과거·현재·미래를 응축하고 있다. 수백개로 난립한 무장세력들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획정된 국경선에 갇혔던 부족 및 종파라는 과거의 산물이다. 이 수백개의 무장세력에 더해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국가, 러시아, 터키·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이집트 등 중동 역내 국가들이 얽힌 개입은 중동분쟁의 전형적 현주소다. 서방, 러시아, 터키 등 역내 국가들이 평화회담 주도권을 놓고 각축하는 현실은 중동에서 계속될 지정학적 게임의 미래이기도 하다.
카다피에 맞서는 봉기가 시작될 때부터 리비아 내전은 크게 보면 서부와 동부에 기반한 무장세력들의 각축으로 진행됐다.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한 트리폴리타니아라는 서부 지역, 벵가지를 중심으로 한 키레나이카라는 동부 지역에 근거한 군벌들이 합종연횡하며 내전을 벌여왔다.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에 더해 서남부의 ‘페잔’은 고대부터 오스만 터키 치하 때까지 독립적인 지역으로 구분됐다. 오스만 터키의 영역이 유럽 국가들에 의해 분할되고, 이 세 지역이 이탈리아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리비아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1951년 독립 이후 왕정에 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의 철권통치 하에서 리비아는 공화국으로 유지됐으나,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 사이의 역사적 차이는 극복되지 않았다.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봉기 역시 키레나이카의 중심 도시 벵가지에서 시작됐다. 동부 키레나이카의 반카다피 부족에 기반한 무장세력들이 트리폴리로 진군해,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다. 카다피의 철권통치가 무너지자, 한 국가로서의 리비아의 정체성도 사실상 붕괴됐다. 리비아가 트리폴리타니아, 키레나이카, 페잔이라는 세 나라로 분할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리비아에 있는 석유자원은 리비아 내의 모든 세력과 주변 국가들을 내전으로 이끄는 동인이 되었다.
리비아 내전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1차 내전(2011년 2월~2014년)은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가이양위원회(NTC) 임시정부의 분열과 파탄까지이다. 2차 내전은 그 이후 지금까지 동부와 서부 지역의 무장세력들이 리비아의 패권을 놓고 본격적으로 각축하는 상황이다. 서부에서는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파이즈 사라즈 총리의 ‘국민통합정부’(GNA·트리폴리 행정부), 동부에서는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이 주도하는 리비아국민군(LNA·투브르크 행정부)이 양립하고 있다.
서방 국가, 러시아, 주변 중동 국가들이 서부의 통합정부와 동부의 하프타르 세력 지지를 놓고 분열된 것이 내전을 악화시키는 최대 이유이다. 리비아 내전의 상수인 외국 개입은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고 그 이후 혼란을 자아낸 최대 요인이기도 하다. 2011년 2월 반카다피 봉기가 시작되자, 유엔 안보리는 즉각 카다피 정권의 민간인 공격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미·영·프 주도로 통과시키고, 3월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반군 지원을 위해 카다피 정권의 시설들을 공습했다.
당초 오바마 미 행정부는 군사개입에 소극적이었으나, 영국과 프랑스의 재촉에 끌려들어 갔다. 미국 내에서는 리비아가 페르시아만처럼 미국에 지정학적 이해가 크지 않은데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카다피 정권 붕괴는 세력공백을 자아내 지중해 지역에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전통적인 세력권인 리비아 인근 지중해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장에 급급해,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는 공습을 주도했다.
카다피 정권은 붕괴됐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그 이후의 상황을 수습하지 못했다.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까지 가세하는 전면적인 내전이 발화되면서, 리비아는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가는 난민 출발지로 변했다. 이는 2015년부터 유럽의 난민 위기를 촉발해, 브렉시트 및 우파포퓰리즘의 부상 등 유럽의 정치위기를 자아내는 원인이 됐다. 오바마가 재임 중 최대실수가 리비아 내전이라며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를 질타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 공인 국가이양위원회(NTC) 임시정부가 기능부전에 빠지던 2014년 총선이 실시돼 의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트리폴리에서 권력을 잡았던 세력들이 권력 이양을 거부하면서, 2차 내전이 발발했다. 새로 구성된 의회는 투브르크로 옮겨, 투브르크 행정부를 구성했다. 유엔 중재로 2015년 거국정부인 통합정부가 구성됐으나, 이번에는 투브루크에 기반을 둔 세력들이 거부했다. 리비아 최대 군벌인 리비아국민군을 이끄는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 주도의 정부 구성을 지지한 것이다.
하프타르의 리비아국민군은 지난 4월부터 트리폴리 쪽으로 진군해, 현재 트리폴리를 놓고 공방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트리폴리에서는 2016년 3월부터 사라즈 총리의 행정부가 거국정부 구성을 놓고 각 세력과 협상 중인 상황에서 하프타르의 트리폴리 함락 공세는 리비아 내전을 최대 변곡점으로 만들었다.
내전의 중심인물이 된 하프타르는 카다피의 쿠데타 집권을 도왔으나, 1980년대에 숙청당해 망명한 인물이다. 그는 반카다피 봉기가 일어나자 귀국한 뒤 동부 키레나이카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을 소탕하는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벵가지의 알카에다 세력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의 전투로 자신의 권력 기반과 명분을 쌓으며, 이집트·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지원을 받았다. 또, 러시아의 강력한 지원뿐만 아니라 서방국가로서는 프랑스의 지지도 받고 있다.
반면, 트리폴리의 통합정부는 명목상으로만 미국 등 대부분의 서방국가의 지지를 받을 뿐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명확한 대리비아 정책을 표명하지 않으면서 하프타르의 트리폴리 공세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터키만이 트리폴리의 국민화합정부를 지지하며 지난 연말 무기 지원에 나섰다.
리비아 내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주변 세력들의 개입이다. 서방의 무책임한 개입이 카다피 정권을 대안없이 붕괴시켜 대혼란을 초래했고, 현재는 국제공인 정부보다는 우월한 무장력을 가진 하프타르 군벌 쪽으로 세력이 기울고 있다.
주변 국가들의 개입 중에서도 최대 변수는 러시아와 터키다.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 이후 중동에서 미국 등 서방의 영향력이 퇴조하는 세력 공백을 러시아와 터키가 메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리아 내전에서 영향력을 확장한 러시아와 터키는 리비아 내전에서도 각축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 러시아가 고용한 용병단체인 와그너 그룹의 러시아 용병들이 하프타르를 지원하려고 리비아에 도착해, 전쟁의 향방을 하프타르 쪽으로 유리하게 돌렸다.
반면 터키는 시리아에 파견했던 민병대, 무장 무인기, 군사고문 등을 파견해 트리폴리의 통합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터키는 트리폴리 정부와 지중해의 가스전 개발 계약을 체결해, 경쟁국인 그리스와 키프러스와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기도 하다. 터키가 트리폴리 정부를 지원하는 것은 경쟁국인 사우디 등 걸프 지역의 수니파 보수왕정 국가들의 영향력 봉쇄에도 목적이 있다. 사우디와 사이가 틀어진 카타르가 터키와 함께 트리폴리 정부를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리아 내전 평화회담의 주도권을 가져간 러시아와 터키는 이번에도 리비아 내전을 놓고 담판을 벌일 태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연말에 리비아에 대한 영향력을 나누는 협상을 러시아와 타결짓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그 어느 국제적 분쟁에서 볼 수 없던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국제분쟁에서 미국이 이렇게 방관자로 전락한 것은 이례적이다.
리비아 내전의 중재역으로는 독일이 적극 나서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주최하는 베를린 회의의 주목적은 리비아와 관련한 국제적인 분열 종식이다. 베를린 회의에 앞서 지난 12일부터 러시아와 터키가 담보하는 휴전이 실시됐으나,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월한 군사력과 국제적 지원을 받는 하프타르 쪽이 평화회담에 앞서 상황을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굳히려 하기 때문이다.
휴전에 이어 외국 개입을 종식하는 공약, 유엔 주도의 무기금수 존중, 영구적 휴전, 군벌 및 무장세력 해체로 설정한 리비아 평화회담의 도정은 아직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