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시리아 북서보 도시 알레포에서 북쪽 터키 국경 쪽으로 약 30㎞ 떨어진 아자즈의 한 마을에 마련된 임시 난민촌에 어린 아이들이 보호자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다. 아자즈/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각) 시리아 북서부 도시 이들리브 인근 마을의 한 난민촌. 밤 기온이 섭씨 영하 9도까지 떨어지면서 혹독한 추위가 몸을 파고들었다. 무스타파 하미디의 가족은 최근 1년 새 벌써 두 번이나 고향집을 등진 전쟁 난민이다. 어설픈 임시 텐트 안이 너무 추워 아이들이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자정께 무스타파는 가스 히터를 텐트 안으로 들였다.
다음날 아침, 무스타파와 아내, 12살 딸과 세 살배기 손녀까지 일가족 4명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18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전한 무스타파 가족의 비극은 지금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최악의 난민 위기의 한 사례일 뿐이다.
무스타파의 가족은 지난해 여름 이후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점령지 탈환을 위해 이들리브 지역 공세를 부쩍 강화하자 공습과 포격을 피해 계속 북쪽으로 밀려가는 피란길에 올랐다가 끝내 참변을 당했다. 직전까지 빈 학교 건물에서 지내다 막 난민촌 텐트로 옮긴 참이었다. 무스타파의 동생은 “형은 밀폐된 공간에 가스 히터를 들이는 게 어떤 일인지 잘 알았을 거다. 그런데 그가 무슨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학교(건물)는 살기에 적절하지 않지만, 앞서 떠나온 피란민이 워낙 많아 빈집이 한 곳도 없다. 한 방에서 서너 가족이 함께 지낸다. 실향민 규모가 마치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커져만 간다”고 말했다.
유엔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지역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한 지난해 12월 초 이후 두 달여 동안 이들리브 지역에서만 약 9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고 밝혔다. 인근 도시 알레포까지 합치면 난민 규모가 300만명에 이른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관 마크 로콕은 17일 성명을 내어 “시리아 북부의 위기가 공포스러운 새 단계(horrifying new level)에 들어섰다”고 경고했다. 로콕 담당관은 “난민의 대다수는 공포에 질린 데다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한뎃잠을 자도록 내몰리는 여성과 어린이들”이라며 “엄마들은 비닐이라도 태워서 아이들을 덥혀주려 애쓰고, 신생아와 어린아이들은 추위로 얼어 죽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경제와 교역의 요충지인 알레포와 이들리브를 잇는 고속도로와 인근 지역을 반군 세력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러시아 공군의 지원 아래 무차별 포격과 폭격을 퍼붓고 있다. 17일 시리아 국영 <사나>(SANA) 통신은 “정부군이 알레포 서부의 마을과 소도시 30곳을 점령하고 반군 세력을 포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이날 시리아 국영 TV에 출연해 “알레포와 이들리브 해방 전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래 한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고 유엔은 밝혔다.
지난 17일 시리아 정부군이 북서부 도시 알레포와 이들리브를 잇는 고속도로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 알레포/EPA 연합뉴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의 최신 집계를 보면, 새로 생긴 난민의 36%는 친척이나 셋집에서, 17%는 이미 수용 인원을 초과한 난민촌에서 연명한다. 또 최소 15%는 채 완공되지도 않은 건물에 터를 잡았고, 12%는 여전히 피란처를 찾아 헤맨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시리아 담당자는 “시리아 북서부 지역이 전례 없는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난민 규모가 인도주의적 대응의 수준을 넘어섰고, 포격과 공습으로 대규모 난민이 생길 아니라 그들에 대한 피란처와 식량 공급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시리아 내전에서 난민 이야기는 새로운 게 아니지만, 최근 이들리브와 알레포 위기는 (국제사회가) 완벽하게 침묵하고 대응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