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리야드에 있는 킹파드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이전까지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금지해온 사우디는 지난해부터 남성 좌석과 분리된 ‘가족석’에서 여성의 스포츠 경기 관람을 허용했다. 리야드/EPA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에 여자축구 리그가 생겼다. 2018년 1월에야 처음으로 여성의 축구경기장 입장이 허용된 지 불과 2년 만이다. 그때만 해도 여성이 남성 보호자가 없이는 자동차 운전과 외국 여행도 할 수 없었던 것과 극적으로 대조되는 변화다.
사우디에서 여자축구리그(WFL)가 창설돼 다음달 1일 수도 리야드에서 창설 행사가 열린다고 현지 일간 <아랍뉴스>가 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사우디 국영 ‘모두를 위한 스포츠 연맹’(SFA)이 여자축구리그 창설로 여성 육상선수를 위한 커뮤니티 스포츠에 또 하나의 거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전했다. 개막 첫해인 올해는 리야드, 제다, 담맘 등 3개 도시에서 지역 리그를 치른 뒤 우승팀들이 여자축구리그 챔피언스컵을 놓고 최종 우승을 겨루게 된다.
이슬람 보수 왕정국가인 사우디는 최근까지도 결혼한 여성이 집 밖을 나설 경우 남편이나 아들, 또는 그들의 위임을 받은 남성 친척 등 남성 후견인이 ‘보호 동행’하는 이슬람 전통 ‘마흐람’을 엄격하게 적용해왔다. 사우디 여성들은 2018년 6월에야 직접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8월에는 남성 후견인 없이도 여권 신청과 외국 여행, 혼인·이혼·출생신고 등을 직접 할 수 있게 됐고, 두달 뒤엔 신분증만 제시하면 남성 후견인을 동반하지 않은 혼자만의 호텔 예약과 투숙도 허용됐다. 대다수 현대 국가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일상생활에 엄격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적용해온 사우디에선 엄청난 ‘파격’에 가깝다.
사우디의 여성 권익 개선 조짐은 2017년 6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84) 국왕의 왕위 승계 서열 1위에 오른 무함마드 빈 살만(35) 왕세자가 주도하는 경제·사회개혁 프로젝트 ‘비전2030’을 반영한다. 그러나 최대 원동력은 이 나라 여성 인권운동가들이 온갖 핍박과 위험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운동을 펼쳐온 덕분이다.
사우디의 인권 향상이 왕실이 주도하고 허용하는 범위와 수준에서만 이뤄지고, 왕실과 지배집단의 이해와 어긋나거나 기득권을 위협하는 개혁 요구는 묵살·외면한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위로부터의 개혁 의지와 별개로, 종교·문화적 전통에 따른 관습과 통념이 뿌리 깊은 것도 여성 인권엔 아직 높은 장벽이다. 지난주 사우디 경찰은 이슬람 성지 메카의 한 카페에서 랩을 부르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여성을 체포해 논란을 낳았다. 여성 활동가들에 대한 체포, 구금, 고문, 성적 학대 등 인권 유린에 대한 외신 보도도 끊이지 않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