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13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청 전면에 아랍에미리트연합 국기 모양으로 조명이 켜져 있다. 텔아비브/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미국의 중재로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와 국교를 맺은 건 이집트(1979년)와 요르단(1994년)에 이번이 세번째이며, 걸프 지역 아랍 국가와의 수교는 건국 72년 만에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합의에 따라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병합 추진 계획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각)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연합과 함께 3국 간 ‘에이브러햄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협정 이름은 기독교(미국)와 유대교(이스라엘), 이슬람교(아랍에미리트)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따온 것으로, 세 나라 정상은 이르면 3주 안에 협정에 공식 서명할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 등이 전했다.
미국을 포함한 세 나라는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 대표단이 상호 대사관 개설과 투자, 관광, 직항 항공편 개설 등에 대한 양자 합의를 하기 위해 몇주 안에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공동성명에는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대한 주권 선언을 중단(suspend)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요르단강 서안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최근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 속에도 이 지역에 대한 병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중동 정세 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제껏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어온 아랍 국가는 이집트와 요르단 두 나라에 불과했다. 아랍권 이슬람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이유로 이스라엘과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온 데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간 관계 정상화 합의가 이뤄진 배경에는 중동 내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뜻이 모인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핵 개발 가능성이 큰 이란 견제를 위해 수니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접촉을 확대해왔다. 여기에, 초강경 ‘대이란 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앞세워 적극적 중재에 나서면서 합의 타결이 탄력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올릴 ‘소재’가 필요한 트럼프 행정부는 또 다른 걸프 지역 국가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중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만과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번 합의를 두고선 당사국들은 물론 외부 서방국가 등에서도 “역사적 합의”란 평가가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돌파구” “역사적 평화협정”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다만 이날 합의 발표 직후 네타냐후 총리가 별도의 연설을 통해 “평화가 담보될 때까지 (서안 합병을) 연기한다는 의미일 뿐, 우리 땅에 대한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남겨뒀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이 “배신” “등 뒤에서 칼을 꽂은 것” 이란 격한 말로 반발하고 있어, 이번 합의가 곧장 중동 정세 안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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