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핵시설 사찰 협상을 마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26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협상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이 국제사회로부터 의심받는 과거 핵시설 두 곳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접근을 허용했다.
이란과 원자력기구는 26일(현지시각) 공동성명을 내어 “핵 안전장치와 관련된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신뢰로써, 과거 핵시설에 대한 사찰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이 전했다. 이란의 이런 조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등 이란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핵개발 프로그램 중단 합의를 아직 지킬 의향이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핵보유 5개국 및 독일(P5+1)과 이란은 2015년 가까스로 핵합의를 체결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바 있다.
원자력기구는 2015년 핵합의와 그 부속의정서에 따른 이란의 약속 이행을 검증할 임무가 있다. 원자력기구는 이번에 문제가 된 과거 핵시설 두 곳과 관련해 “합의 체결 전 활동한 흔적이 있으나 제대로 신고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원자력기구가 수집한 증거들에 따르면, “두 시설은 2003년까지 핵폭발 장치의 개발과 관련된 광범위한 활동을 수행”했고, “두 시설에서 신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핵물질 및 핵관련 시설에 대한 문제에서 이란이 국제사회의 의문에 답하지 않고, 이에 대한 접근을 불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은 원자력기구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으로 이란의 핵 활동을 근거없이 의심한다며 사찰 요구를 거부해왔다. 하지만 라파엘 그로시 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2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을 방문해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기구 대표와 집중적인 양자 협의 끝에 합의를 이끌어 냈다.
성명은 “이란이 원자력기구가 특정한 두 곳에 대한 접근을 자발적으로 허용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원자력기구의 검증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시설들에 대한 원자력기구의 접근과 검증 활동의 날짜도 합의됐다. 성명은 또 “현 국면에서 원자력기구는 시설들에 대한 추가적인 질문과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핵합의를 파기한 이후, 이란 역시 준수 의무가 사라졌다며 핵합의 파기를 위협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재선되면 이란과 즉각 재협상할 것이라고 밝힌 반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과거 협정을 회복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란의 이번 원자력기구 사찰 허용은 미 대선 이후 미국과의 재협상을 염두에 둔 조처로도 해석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