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왕위 계승 마무리, 중동개혁 바람 진앙지 될까

사바 새국왕 40년 외교통 ‘확고한 친미’
여성참정권·종교관용성 교육 등 개혁 주도
아랍권 최초로 의회가 ‘국왕교체’ 파장 촉각

국제유가를 출렁이게 했던 석유 부국 쿠웨이트의 왕위계승 혼란이 마무리됨에 따라 쿠웨이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지 관측통들은 미군 주둔과 이라크전 지지 등 그동안 쿠웨이트가 취해온 친서방정책과 정치·경제 개혁 기조가 새 국왕 체제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셰이크 사바 알아흐마드 알사바(76) 새 국왕은 2003년 총리로 지명된 뒤, 건강 문제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던 전임 국왕과 왕세자를 대신해 쿠웨이트를 사실상 통치해왔다. 그는 25일 의회에서 인준절차가 끝나는 대로 즉위한다.

알아흐마드 알사바 국왕은 쿠웨이트가 영국에서 독립한 직후인 1963년부터 40년 동안 외무장관을 지내면서 세계 지도자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다. 그는 또 국가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는 확고한 친미정책을 추구해왔다.

국내적으로는 지난해 여성참정권을 명시한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첫 여성장관을 임명했으며, 종교적 관용성을 강화하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등 개혁을 이끌어왔다. 외국 투자자 유치에도 적극적이었고, 에너지 부문에서도 석유 산업 일부를 외국기업에 개방하려 하고 있다. 현재 석유 생산 부문에서 85억달러의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는 안이 의회에 제출돼 있다. 1999년 심장 맥박조정기 수술을 받은 뒤 치료를 받아 왔으나 건강상태는 비교적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쿠웨이트 의회는 24일 병 때문에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는 셰이크 사드 알압둘라 알사바(76) 국왕의 퇴위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를 받아 내각도 알아흐마드 알사바 총리를 새 국왕으로 지명했다. 지난 15일 셰이크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사바 국왕이 사망한 뒤 왕위를 물려받은 사드 국왕은 의회 표결 직후 퇴위서를 제출해 9일 만에 물러났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의회는 이 점을 문제 삼아 그의 퇴위를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아랍국 가운데 처음으로 의회가 헌법에 따라 국왕을 교체한 사례로 주변국들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쿠웨이트의 알사바 왕가는 1756년 수립된 뒤 왕가 내 두 가문인 자베르가와 살렘가에서 번갈아 왕위를 계승해왔고 이번에는 사드 국왕의 살렘가에서 국왕을 맡을 차례였다. 그렇지만 이번 결정으로 사실상 이 전통이 깨졌다. 셰이크 자베르 전 국왕과 알사바 새 국왕 지명자는 같은 자베르가 출신이다. 살렘가에선 양위 반대가 많았으나, 세력이 많이 약해져 의회의 움직임을 막지는 못했다.

국왕을 의회가 표결로 교체한 것은 아랍·중동권에서는 처음으로 ‘의회 쿠데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웨이트는 걸프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헌법과 의회제를 채택하는 등 비교적 민주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다. 분석가들은 쿠웨이트의 사례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본다.

쿠웨이트는 한국의 경상북도 정도인 면적 1만7800㎢의 소국이지만 전세계 원유 확인매장량의 10%인 973억배럴 위에 떠있는 석유 부국이다. 한국에는 세번째로 큰 원유 공급처다.

박민희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