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티그레이주에서 내전을 피해 탈출한 난민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수단-에티오피아 국경이 있는 수당 동부의 한 교회 앞에서 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수단/AP 연합뉴스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주에서 총살 영상 등 ‘민간인 학살’에 대한 증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4개월 만에 1900명이 학살됐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벌어진 이후, 티그레이에서는 정부군과 반군, 민병대 등에 의해 150차례에 걸쳐 민간인 1900명이 학살됐다고 벨기에 겐트대학교의 현지 연구팀이 2일(현지시각) 보고했다. 학살된 민간인 중에는 어린 영아들과 90대 노인들도 포함됐다. 겐트대 연구팀은 티그레이 분쟁이 벌어진 이후 현지에서 조사를 벌였고, 학살된 주민의 가족과 친구, 언론 보도 등을 상호 검증한 뒤 이런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연구팀은 5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을 ‘학살’로 규정했는데, 지난달에만 20건이 파악됐다. 이 중에는 티그레이주 최서단 마을인 후레라에서 3일 동안 민간인 250여명이 학살 당한 사건도 포함됐다. 후레라에서는 인종 청소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지난 3월25일에는 반군인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TPLF)을 쫓던 접경국 에리트레아의 정부군이 그리자나 마을에서 13명을 살해했다. 희생자 중에는 2살 영아도 있다.
대부분의 사망자들은 무장 병력이 적군을 수색하는 도중 약식처형으로 총에 맞아 숨지거나, 조직적인 학살에 의해 발생했다. 특히, 악숨에서 약 800명이 집단 학살됐다. 마이 카드라에서도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 쪽 민병대에 의해 600명이 숨졌다.
학살의 책임 소재가 명확히 규명된 사건에서 희생자들의 14%는 에티오피아 정부군에 의해, 45%는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연합한 에리트레아 정부군에 의해, 5%는 티그레이 인근 암하라주의 불법 민병대에 의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영국 <비비시>(BBC)도 2일 티그레이에서 정부군에 의해 적어도 15명이 학살되는 동영상을 보도했다. 이 동영상에서는 정부군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비무장한 민간인을 벼랑 끝으로 끌고가 사살하고, 주검을 절벽으로 던져버리는 장면이 담겼다. <비비시> ‘아프리카의 눈’ 탐사보도팀은 3월 초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전파되던 이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티그레이 북부 마베레 데고에서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과 유럽연합(EU) 고위대표는 성명을 내어 “최근 알려진 티그레이에서의 인권 침해와 탄압 및 국제인도법 위반을 매우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정부가 인권탄압에 책임을 묻기로 한 약속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행하길 기대한다”며 에티오피아 인권위원회(EHCR)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티그레이 분쟁에서 인권탄압을 공동조사하기로 합의한 점도 언급했다.
티그레이 분쟁은 지난해 11월 에티오피아 정부군이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의 정부군 초소 습격을 빌미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분리독립 성향이 짙은 티그레이주정부에서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은 집권당이었다.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총리는 티그레이에서 법치를 확립하겠다고 군사작전을 명령했다.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은 주정부의 수도 메켈레에서 축출된 뒤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이 분쟁으로 지금까지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400만명이 이상이 긴급 구호를 받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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