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고 있다. 로마/AF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외교장관이 31일 일곱달 만에 만나 다시 대만 문제 등을 놓고 충돌했다.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시간 남짓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날 만남은 두 사람이 지난 3월 알래스카에서 만나 격렬한 설전을 벌인 뒤 처음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작심하고 대만 문제를 꺼내, 중국이 일방적으로 현상 변경하려는 시도에는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말했다고 국무부 관리가 전했다. 최근 중국군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군사훈련을 핑계로 항공기를 보내는 등 군사 긴장을 고조시켜온 행위를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미국이 대만의 독립 지지 세력을 “묵인”하고 “지지”하려 한다고 반격했다. 왕 부장은 “대만 문제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라며 “일단 잘못 처리하면 중-미 관계에 전복적이고 전면적인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우리는 미국이 가짜 하나의 중국 정책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몰아세웠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필요하면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존 정책과 다른 노선을 취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변경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미국 국무부 관계자가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중국의 인권 침해와 홍콩, 신장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남중국해 문제 등을 거론하며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침해하는 중국의 행위는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왕 장관은 “미국이 중국의 적법한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 여러 쟁점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밝히고 “미국이 노선을 바꿔 중-미관계를 건강한 발전의 길로 되돌릴 것을 요청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이날 만남에 대해 미국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솔직”했고 생산적이었으며, 연말로 예상되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화상 정상회의를 위한 기초 작업에 도움이 되는 회담이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