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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군인들에 꽃 건넸던 시민들, 이젠 총 들고 봄을 기다린다

등록 2022-01-27 04:59수정 2022-01-27 09:18

미얀마 쿠데타 1년 : 미얀마에서 온 편지 ⑭
“국민의 군대 돼달라” 염원에도 발포
민주주의 5년간 한순간에 피로 물들어

국제사회 미온적 대응 등 평화 먼 길
무장한 청년들 군부에 맞서 ‘긴 싸움’
미얀마 쿠데타 한 달 뒤였던 지난해 3월1일 최대 도시 양곤에서 시민들이 한 손에 붉은 장미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모습. 양곤/EPA 연합뉴스
미얀마 쿠데타 한 달 뒤였던 지난해 3월1일 최대 도시 양곤에서 시민들이 한 손에 붉은 장미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모습. 양곤/EPA 연합뉴스

미얀마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을 ‘봄의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지난해 2월1일 봄이 허무하게 저문 뒤, 한해가 지나 다시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쿠데타가 발생한 ‘그날 아침’의 혼란스러움은 제게도 오랫동안 시달려온 악몽이 되었습니다. 모든 통신이 두절되어 무거운 맘으로 분주히 차를 몰고 간 직장에서 만났던 미얀마 동료들이 굳은 얼굴로 “쿠데타가 일어났대”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 쿠데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외교공관의 공지가 나온 다음날 군사령관이던 민 아웅 흘라잉은 텔레비전에 나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었습니다. 설마 한 뒤 뒤통수를 맞은 이 찜찜함…. 제 마음도 그런데 현지인들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뒤 전국의 시민들은 저녁 8시가 되자 군부를 반대한다는 의미로 철제 통을 힘껏 두들겼고, 대로변에 몰려나가 민중가요를 부르며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습니다. 그러자 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들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2월 말이 되자, 군인들을 향해 꽃을 내밀며 “국민의 군대와 경찰이 되어달라”던 시민들이 물대포와 곤봉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군경의 모습을 보며, 5년 동안 이어지던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한순간 피로 물들어 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있던 평화스럽던 이곳이 과연 현실 속 세계가 맞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한 달 만에 450여명이 총탄에 쓰러지고 두 달 만에 800여명이 산화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비참한 사진들과 영상들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컴퓨터를 켰다 껐다를 반복했습니다.

가장 큰 두려움은 학생들의 희생이었습니다. 그것만은 감당할 수 없었기에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아 가며 흥분한 이들을 다독였습니다. 에스엔에스(SNS)에 피로 물든 참혹한 영상들이 올라오면 그날은 저나 학생들이나 함께 수업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언의 분위기에 휩싸여 휴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6월이 되면 미얀마는 우기에 접어듭니다. 지난해 초 인도에서 발생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미얀마로 남하하여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의료진도 시위에 참여했던 터라 의료체계는 무방비 상태로 변한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7월에는 15년 지기 미얀마 친구를 비롯해 학생들의 부모님, 직장 교수님들, 한국 교민들까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델타 변이는 중세시대 역병 같은 공포와 함께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쿠데타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저주받은 땅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8월이 되자 조금씩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바이러스가 잡힌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확진되며 집단 면역이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9월이 되자 국민통합정부(NUG)는 군부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합니다. 3~4월 군부의 무력진압으로 희생된 미얀마 청년층과 엠제트(MZ)세대들은 평화시위가 아닌 무장저항이 필요하다 판단했고, 변방에서 활동 중인 소수종족 무장단체로 가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합니다. 처음 군부는 이들의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위협으로 떠오르자, 군부는 청년들을 테러리스트와 적으로 규정하고 전투기·헬기·중화기 등을 투입해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군이 활동하는 변방이나 산악 마을은 보복 대상으로 지정돼 마을 전체가 화재로 타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되기도 합니다. 달아난 시민들은 난민으로 전락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사태가 조기에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그 때문에 미얀마 국민은 총칼을 쥐게 됐습니다. 이 갈등이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민들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긴 싸움’에 돌입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싸움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1988년의 이른바 ‘8888 혁명’과 확연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민저항이 시작된 것은 군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과 국제적 고립으로 민생이 파탄 났기 때문입니다. 군부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수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이 비극은 뒤늦게 외부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군부는 예전처럼 국정이 안정되면 총선을 시행하여 정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적 경험을 통해 군부의 속내를 파악하고 있는 시민들은 이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2016년부터 5년 동안 민주주의 체제 아래 매년 8% 이상 성장하던 눈부신 경제발전과 진정한 평등과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경제성장이 가져다준 통신의 발달로 미얀마의 상황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갑니다. 작년 한 해 한국 국민이 보내준 지지와 성원은 미얀마 국민에게 큰 용기가 됐습니다. 미얀마에 어서 빨리 따뜻한 봄이 다가오기를 희망합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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