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시위 친미정권 표적…한국기업도 ‘무차별 공격’ 우려
이슬람권에서 번지는 마호메트(무함마드) 만평 항의시위의 불똥이 결국 파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까지 튀었다. 이 시위가 단순한 항의 차원을 넘어 이슬람권 친미정부 등을 겨냥한 폭동으로 증폭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슬람권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도 이제 미국과 유럽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15일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북동부 페샤와르와 라호르에선 7만여명의 시위대가 외국계 기업의 사업장을 공격했다. 한국의 삼미대우고속버스 터미널 건물과 버스 17대가 불에 타 최소 50억원의 피해를 봤다. 케이에프시(KFC)와 노르웨이계 휴대전화 가게, 호텔, 극장 등에도 닥치는 대로 불을 질렀고, 8살 소년 등 5명이 목숨을 잃었다. 16일에도 페샤와르는 물론 남부 최대도시 카라치에서 4만여명이 덴마크 국기 등을 불태우며 항의시위를 계속했다. 정부와 현지 진출 기업들은 일단 의도적으로 한국 기업을 겨냥한 공격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삼미대우고속버스 이재병 파키스탄 법인장은 16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유럽, 미국 기업이 공격 대상이 된 가운데 우리 회사가 승객을 뺏어가는 데 반발한 경쟁사들이 혼란을 이용해 우리 터미널을 공격한 것”이라며 “한국 기업이라서 타깃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사태가 쉽게 진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미대우고속버스는 직원 2800여명을 고용해 35개 도시를 운행하는 파키스탄의 대표적 외국기업이다. 박준용 외교통상부 서남아대양주과장도 “페샤와르에선 삼미대우 터미널뿐 아니라 외국계 호텔, 패스트푸드점 등이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입어, 한국 기업이 특별한 타깃이 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만평 항의시위를 계기로 이슬람 대 비이슬람이라는 정서가 번지는 양상을 보여 상황이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특정 표적이 된 것은 아니지만, 외국계 기업에 대한 공격에서 예외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외교부는 16일 파키스탄 정부와 군에 한국 기업과 한국인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파키스탄에는 삼성전자, 현대건설, 주원상사 등 10여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까지 공격 대상이 된 것은 파키스탄 정권의 친미 성향에 반발하는 반정부·반미 운동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인구 규모로 제2의 이슬람국이지만, 군부 출신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의 확실한 맹방이다. 그 반감으로 이슬람주의 세력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정부 정책과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3월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이 예정돼 있다. <비비시> 등은 파키스탄 정부의 친미 정책을 비판해온 ‘무타히다 마즐리스에 아말’(MMA) 등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이번 시위에서 주도적인 구실을 하면서 반정부 시위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무샤라프 대통령도 16일 “반사회적인 범죄세력들이 시위를 이용하고 있다”고 이슬람주의자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16일 카라치에서 자마아티 이슬라미 등 이슬람주의 야당세력이 시위를 벌이자, 케이에프시와 맥도널드 등 서구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을 보호하기 위해 5천여 병력이 배치되고 휴교령이 발동됐다. 미국계 시티은행은 검은 천으로 로고를 가렸다고 <아에프페(AFP)통신>이 전했다. 파키스탄에 진출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상황에서 친미 정부에 대한 반감이 만평시위와 뒤얽히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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