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무슬림 여학생이 10일 첸나이에서 교내 히잡착용 금지에 항의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첸나이/AFP 연합뉴스
인도에서 히잡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슬람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히잡을 쓸 권리를 요청하고 나서자, 이에 힌두 활동가들이 힌두교를 상징하는 샤프런 스카프를 착용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폭력 사태가 보고되는 등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영국의 <비비시>(BBC) 방송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지난주 인도 카르나타카의 우두피 지역에서 여고생들이 학교 당국의 히잡 착용 금지에 항의하면서 비롯했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의상이다. 인도에서 이슬람 인구는 15% 남짓으로 2억명이 넘는다. 따라서 인도 거리에서 히잡이나 부르카를 쓰고 다니는 이슬람 여성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에 학교 당국은 교정에서 히잡 착용이 허용되며 교실에서만 벗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이들 여학생은 교실에서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수업 중에 교사가 학생의 얼굴을 볼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여학생들의 항의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나가면서 확대됐다. 지난주 19살 여학생 무스칸 칸은 샤프런 스카프를 쓴 힌두 남자 무리가 학교 앞에서 “자이 슈리 람”(라마신 만세)이라고 외치자, 이에 굴하지 않고 “알라후 악바”(신은 위대하다)라고 맞받아치는 영상이 번져나가면서 히잡 착용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라마신은 라마찬드라 또는 람이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신이며, 알라후 악바는 이슬람교의 신에 대한 찬사이다.
이슬람 여학생들의 항의는 뉴델리와 콜카타, 첸나이 등 주요 도시로 번져나갔고, 이에 일부 힌두 학생들과 활동가들은 힌두교를 상징하는 샤프런 스카프를 두르고 반대 시위로 맞불을 놓았다. 지난 8일엔 이슬람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해 17살의 나이로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나서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등교가 거부되는 것은 끔찍하다”며 인도 지도자들을 향해 “이슬람 여성의 주변화를 막기 위해”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태는 더욱 험악해져, 지난 9일 몇몇 지역에서 서로 돌을 던지는 투석전이 전개되고 심지어 방화가 일어났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논란이 확산하자 카르나타카 교육당국은 사흘간 휴교령을 내렸다. 또 카르나타카의 법원은 학교당국의 히잡 착용 금지를 중단시켜달라는 청원에 대해 “사안이 엄중하다”며 “상급심의 심의로 넘길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교육당국은 히잡과 샤프런 스카프 착용 모두를 금지한 학교당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카르나타카 교육장관 마게시 비시는 <비비시>에 “모든 게 기본적으로 정치다. 모두 내년 선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인도 이슬람 정치세력을 겨냥했다.
처음 이번 사건이 일어난 카르나타카는 힌두 민족주의 정당인 집권 비제이피(BJP)당의 세력이 강한 지역이다. 비제이피당은 2019년 집권 이래 소고기 도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이종교간 결혼과 개종을 어렵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힌두교의 색채를 강화해 왔다. 인도 전역에서도 비제이피 집권 이후 이슬람 반대 혐오 발언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애틀랜틱 카운슬 남아시아 센터의 루다베 샤히드는 히잡 논란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결과 갈등, 양극화에 기름을 부으려는 “더 넓은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전혀 히잡의 문제가 아니다. 혐오 발언의 환경, 사람들의 공민권이 부정당하는 환경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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