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대통령궁 앞에서 시민들이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콜롬보/AFP 연합뉴스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한 스리랑카가 일시적인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난달랄 위라싱게 스리랑카 중앙은행 총재가 12일 대외 채무 상환 일시 중지를 선언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위라싱게 총재는 “채무를 상환하기 힘들고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며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처는 채무 재조정을 해 ‘하드 디폴트’(hard default)를 피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전면적 채무 불이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채무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일시적 대외 채무 상환 중지를 선언한 이유로 연료 같은 필수적 물품 수입에도 사용할 외화가 부족할 만큼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보이는 상황도 들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스리랑카는 지난 2019년 집권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정부의 급격한 감세 정책과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주요산업인 관광업의 추락,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중국에 과도한 채무를 진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제난을 겪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격해진 세계적 물가 상승까지 겹치며 일시적 디폴트 선언까지 이르렀다. 스리랑카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석탄과 석유를 수입하지 못해 계획 정전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하루 13시간까지 계획 정전이 실시됐고,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라자팍사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3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과 그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를 제외한 각료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 사태로 아지트 니바르 카브라알 당시 중앙은행 총재도 물러났고, 위라싱게 총재는 지난 7일 취임해 취임한 지 일주일도 안됐다.
스리랑카 정부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기준으로 19억3천만달러(2조3777억원)에 불과한데, 올해 만기가 다가오는 대외 채무만 40억달러(4조9280억원)에 이른다. 이중 10억달러(1조2320억원)는 오는 7월에 만기가 닥친다.
스리랑카 정부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주부터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위라싱게 총재는 국제통화기금 지원을 받은 뒤 채무 상환에 나설 뜻을 밝혔다. 그는 “이것(채무 상환 일시 중지)은 우리가 채권단과의 합의 및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받기 전까지 하는 임시 조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필수 수입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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