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치러진 오스트레일리아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의 앤서니 알바니즈 대표가 이날 밤 시드니에서 열린 당 축하연에서 부인 조디 헤이든과 아들과 네이선 알바니즈와 같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9년 만에 보수에서 중도좌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또,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앵글로-켈틱계가 아닌 인사가 총리에 오르게 됐다.
21일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은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집권 보수연합인 자유-국민당 연합에 승리했다. 22일 노동당은 하원에서 72석을 확보했고, 자유-국민 연합은 51석에 그치고 있다고 <에이비시>(ABC) 방송 등 현지 언론들이 추계했다.
노동당이 과반인 76석을 넘겨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노동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녹색당이나 무소속 의원들과 연정을 꾸려야 한다. 녹색당 등은 최대 16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후변화 대책을 강조한 녹색당 등을 비롯한 무소속 후보에 대한 득표율이 크게 늘었다.
자유당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21일 밤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하고, 당 대표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오는 24일 도쿄에서 열리는 미국,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에 참석할 총리가 결정돼야 한다며 패배를 일찌감치 인정했다.
총리에 취임할 노동당의 앤서니 알바니즈(59) 대표는 승리 수락 연설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사회서비스 투자를 늘리고, 기후전쟁을 끝내겠다며 강화된 기후변화 대책을 약속했다. 그는 21일 “나의 노동당 팀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민 통합을 위해 매일 일할 것이고 가치있는 정부를 이끌 것이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2일에는 시드니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23일 총리 취임 선서를 할 예정”이라며 취임 다음 날 일본으로 가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바니즈 대표는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121년만에 주류인 앵글로-켈틱계가 아닌 이탈리아계 출신으로 총리가 된다. 그는 시드니 교외의 서민층 주거지역인 캠퍼다운 출신으로 역경을 딛고 총리직까지 올랐다. 알바니즈는 “장애 연금을 받는 미혼모의 아들이 캠퍼다운의 공공주택에서 자라나서 오늘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로서 여러분 앞에 선 것은 우리의 위대한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얘기한다”고 말했다.
1996년에 의회에 입성한 그는 지난 2013년 케빈 러드 당시 총리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냈다. 그는 노동당 내에서 좌파로 활동해 왔으나, 2019년 대표가 된 이후로는 중도 쪽으로 정치적 위치를 옮겨왔다.
그가 이끈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에 대한 더많은 재정지원과 사회복지 확장을 공약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택가격이 폭등해, 서민들의 불만이 높은 상태였다.
노동당은 최저임금 인상, 오는 2030년까지 43%의 온실가스 방출 감축에 이어 2050년에 온실가스 방출 제로라는 파격적인 기후대책 공약을 내세웠다. 노동당은 중국이 최근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맺어 군과 경찰을 솔로몬제도에 파견할 수 있게 된 것에 대응해, 남태평양 섬나라 등 주변 국가들의 군을 훈련시키는 태평양방위학교를 개설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알바니즈는 미국이 주도하는 태평양 지역의 대중국 견제 성격인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재차 밝혀, 전임 정부에 이어 적극적인 대중 견제 대책을 표방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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