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6일 인도 뭄바이에서 무슬림들이 방송 토론에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인도인민당(BJP)의 누푸르 샤르마 대변인을 체포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뭄바이/AP 연합뉴스
지난 6월 초 인도 집권당인 ‘인도인민당’(BJP)의 누푸르 샤르마 대변인이 방송토론에서 공공연히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하·모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무함마드의 가장 어린 아내였던 아이샤에 대한 발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발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모든 정파의 아랍권 나라들이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이런 혐오·증오 발언을 허용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의 악순환을 부를 것”이라며 강력 항의했다. 인도인민당은 곧바로 성명을 내어 “어떤 종교의 종교적 인물에 대해 모욕하는 것도 반대한다”고 해명하고 샤르마 대변인의 직무를 정지하는 등 적극 진화에 나섰다. 이 사건에 대해선 인도에서 이슬람 등 소수 종교를 겨냥한 배제와 증오의 정치가 얼마나 횡행하고 있는지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인도에서는 전체 인구의 14%(1억7천만명) 남짓한 이슬람 인구에 대한 차별과 배제, 증오와 혐오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1월엔 힌두 민족주의 극우인사가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에게 “무슬림을 죽여 나라를 지키자”고 선동해 폭력 사태로 이어졌고, 2월엔 카르나타카주에서 이슬람 여학생들의 교내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려 이를 둘러싼 이슬람의 항의 시위와 힌두교의 찬성 시위가 인도 전역으로 확대됐다. 그로 인해 투석과 방화 등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힌두교의 라마신 탄생기념일인 4월 ‘람 나브미’(라마 나바미) 축제 기간엔 힌두 민족주의 세력이 무슬림 거주지역에 몰려들어 위력행사를 하거나 이슬람 사원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 증오발언 80% 집권당에서 나와
샤르마 대변인의 무함마드 비하 발언에 대해 카타르 주재 인도 대사는 인도 정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는 “비주류 주변인의 발언”이라는 해명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해명이라는 지적이 많다. 인도인민당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속한 집권당이며, 문제 발언은 그 정당의 대변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인도의 현실을 보면, 인도인민당이 극단적인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워 이런 차별·배제·증오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뉴델리 티브이>(NDTV)는 지난 1월, 2014년 모디 총리가 집권한 이래 주요 정치인의 증오발언이 만모한 싱 총리의 국민회의 연립정부 시절(2009~2014)보다 무려 1130%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각료, 의원, 정당 대표·간부 등의 증오발언은 싱 총리가 통치하던 5년간 19건(매달 평균 0.3건) 발생했지만, 모디 통치기엔 7년에 걸쳐 348건(매달 3.7건)으로 폭증했다.
이 발언 중 80%가 넘는 297건이 인도인민당 쪽 인사의 입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요기 아디티아나트 우타르프라데시 주정부의 수석장관은 2014년 9월 “무슬림이 20%면 충돌이, 20~35%면 폭동이 일어나며, 35%가 넘으면 비무슬림의 자리는 없게 된다”고 선동했다. 아난트 쿠마르 헤그데 인도인민당 의원은 2016년 3월 “이슬람이 있는 한 테러는 종식되지 않는다. 이슬람을 끝내지 않으면 테러를 끝낼 수 없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도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 주정부의 수석장관이었던 2002년 힌두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1천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해당하는 폭동이 일어났을 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둘러싸고 의혹을 받은 이력이 있다. 모디 총리는 연루 의혹을 부인해 왔으나, 당시 미국과 영국 등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기피 대상’에 올리며 입국을 금지했다.
차별·배제·혐오·증오의 정치는 모디 총리 집권 이후 정부 정책에도 착실히 반영됐다. 인도인민당 정부는 2019년 이슬람계 주민이 다수인 잠무 카슈미르 지역에 허용됐던 광범한 자치권을 박탈하고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했다. 또 시민권법 개정에 나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 등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며, 이슬람교도만 제외했다. 우타르프라데시주 등에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결혼이 금지됐고, 민간 자경단도 구성돼 힌두교에서 신성히 여기는 소를 먹었다는 의혹만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2015~2018년 사이에 쇠고기 식용 또는 보관 의혹으로 공격받아 살해된 사람이 44명에 이른다. 이 중 36명이 무슬림이다.
이슬람교도가 인도 사회에서 얼마나 차별과 배제를 당하고 있는지는 각종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영국 <비비시>(BBC) 보도에 따르면 2016년 인도 연방경찰 중 무슬림은 3%에도 못 미쳤다. 인구 비중이 14%인 것에 견주면 지나치게 과소 대표되고 있는 것이다. 또 도시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8%만 정규직에 취업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연방 의회에서 무슬림 의원은 1980년 9%에서 2020년 5% 아래로 줄었다.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민족의용단’(RSS)의 행사. 출처: 민족의용단 누리집
■ 1992년 아요디아 유혈참사가 분수령
인도에서 차별의 정치를 낳고 있는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5년 케샤브 발리람 헤드게와르가 결성한 ‘힌두 민족의용단’(또는 힌두 국민의용단·RS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단체는 이른바 전통 힌두문화의 회복과 순수 힌두의 나라 힌두스탄의 건설을 목표로 활동한다. 현재 전국에서 500만명 넘는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민족의용단 회원이었다는 라탄 샤르다(64)는 미국의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에 “우리는 과거 (무슬림 왕조인) 무굴(무갈)제국과 영국 등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으며 위대한 인도 고유의 역사와 힌두 문화를 빼앗겼다”며 “민족의용단이 이를 다시 일깨웠고, 이제 우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힌두의 아들딸 이름을 암송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힌두 민족주의가 이슬람과 기독교 등 외래 종교와 문화에 맞서 이른바 ‘힌두트바’(Hindutva·순수 힌두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극도로 배타적이며 매우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1948년 1월 종교 간 포용과 화해를 주장해온 독립영웅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를 암살한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자 나투람 고드세도 민족의용단의 회원이었다. 당시 민족의용단은 “고드세가 과거 회원이었으나 이미 조직을 탈퇴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피해갔다. 민족의용단의 초기 지도자 중에는 마다브 사다시브라오 골왈카르처럼 순수 아리안 혈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유대인을 집단학살한 나치 독일을 공개적으로 찬양한 이도 있다.
이들은 간디 등이 주도한 독립운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1947년 인도 독립 이후에도 주류 정치권에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1960~70년대를 거치며 인도 전역에서 많은 학교와 명상센터 등을 운영하며 학생과 청소년, 여성 등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등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들이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은 1980년대 말 북부 인도의 도시 아요디아에 힌두사원을 건립하자는 운동을 주도하면서다. 힌두교도들이 ‘라마’ 신의 탄생지로 믿는 아요디아에는, 16세기 건립된 이슬람 사원 ‘바브리 마스지드’가 있었다. 힌두 민족의용단 활동가들은 당시 무굴제국이 라마 신전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바브리 사원을 건립했다며 라마 신전의 원상회복을 주장했다. 이들은 1992년 12월 끝내 바브리 마스지드에 난입해 사원을 파괴했고, 그 여파가 인도 전역으로 번져 곳곳에서 종교적 충돌 끝에 2천여명이 숨지는 유혈참사가 빚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힌두 민족주의는 전국적 주목을 받게 됐다. 이들의 정치조직인 인도인민당은 1996년과 1998년 선거에서 장기 집권해온 네루-간디 일가의 국민회의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일약 제1당으로 부상했다. 인도인민당은 2004년 국민회의 주도의 연정에 정권을 내줬으나 2014년, 2019년 선거에서 다시 승리해 권력에 복귀했다. 모디 총리도 1970~80년대 젊은 시절 민족의용단의 활동가로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아요디아 힌두사원 건립 운동이 한창이던 1990년 말엔 여론 조성을 위해 인도인민당 지도부가 두달 남짓 전국 순회에 나섰는데, 당시 모디 총리도 실무자로 참여했다.
민족의용단은 처음엔 직접 정치와 거리를 두며, 도덕적·정신적 권위로 남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5년 7월 모디 총리가 뉴델리에서 열린 민족의용단의 비밀회의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사정이 달라졌다. 당시 모디 총리는 회의에서 “민족의용단 구성원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인도의 정치 칼럼니스트인 니르자 초두리는 “총리와 장관들이 민족의용단에 정부 정책을 보고하고 조언을 받기 위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의용단의 영향력은 현재 공립학교의 커리큘럼 등 교육정책에서 경제·사회정책 전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가 29일 싱가포르 거래소(SGX) 최고경영자 로분체와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증오발언 단죄…국제 압력이 변수 될까
인도의 국내법 체계엔 증오나 혐오 발언에 대한 정의나 포괄적 처벌 조항이 따로 없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로 집단 간 적대감을 조장”하거나 “다른 종교나 종교적 신념을 모욕해 종교적 감정을 격분시키는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행동”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여러 법률에 명시돼 있어 사법적 단죄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사태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경찰 등 법 집행기관이 나 몰라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무슬림 집단폭행 현장에 출동해도 이를 지켜보는 동영상 등이 많이 공개돼 있다. 사법부도 소극적이다. 모디 정부의 장관을 비롯한 많은 인도인민당의 간부들이 증오발언으로 법정에 섰지만, 법원은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며 단죄를 꺼린다. 모디 총리도 증오발언이나 이에 따른 폭력사태가 발생해도 공식 언급을 삼간다. 최고 지도자의 이런 침묵은 폭력에 대한 묵인·동조로 해석된다. 인도 국내에선 증오정치에 제동을 걸 세력이나 장치가 없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월 샤르마 대변인의 발언이 아랍권의 반발을 사며 외교 이슈로 비화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고삐 풀린 인도의 증오정치에 제동장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이클 쿠걸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부국장(남아시아 담당)은 “인도는 증오정치와 관련한 일이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며 “인도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외교관계가 확대될수록 인도 국내정치는 국제사회의 더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