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아시아·태평양

‘간디’ 이름표 뗀 국민회의 ‘대장정’, 힌두 민족주의 제동걸까

등록 2022-11-15 07:00수정 2022-11-15 08:58

인도 명문 정당, 변신 안간힘…새 대표에 불가촉천민 출신
의석 10%도 안 되는 추락에 민심얻기 남북종단 행진 나서
소냐 간디(왼쪽)가 지난달 19일 국민회의 새 대표로 선출된 말리카르준 카르게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고 있다. 국민회의 누리집
소냐 간디(왼쪽)가 지난달 19일 국민회의 새 대표로 선출된 말리카르준 카르게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고 있다. 국민회의 누리집

네루-간디 가문 이외의 인사가 과연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힌두 민족주의’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50년 넘게 인도 정치를 주름잡던 명문 정당 ‘국민회의’의 대표에 24년 만에 처음으로 ‘간디’란 이름이 아닌 이가 선출되며 인도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국민회의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각) 당대회에서 말리카르준 카르게(80) 전 의원을 새 대표로 뽑았다. 그는 이날 샤시 타루르(66) 의원과의 양자 대결에서 대의원 9천여명 가운데 7천여명의 지지를 얻어 압승을 거뒀다. 카르게 새 대표는 취임 뒤 “우리는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위협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워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등 배타적 모습을 보이는 모디 총리 등 인도인민당(BJP)에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불가촉천민 출신 새 대표의 험난한 앞길

카르게 새 대표는 남서부 카르나타카주의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간디 집안과 가까운 경험 많은 정치인이다. 1969년 국민회의에 입당해 주 의원, 주 정부 장관을 거쳐 2009년 연방의회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재선의원을 지냈다. 만모한 싱 총리 정부(2004~2014)에선 철도부 장관과 노동고용부 장관을 역임했다.

카르게 대표의 등장에 대해 젊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 쪽에선 실망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개혁으로 새바람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고 전국적 명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로 노련한 정치인이 대표가 돼 당내 분란을 추스르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치 평론가 케이 베네딕트는 카르게 대표가 “당내 분란을 다독이고 여러 정파 사이에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데 뛰어난 구실을 할 것”이라며 “그는 누구와 다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자와할랄 네루(1889~1964) 이후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외손자 라지브 간디와 그 부인 소냐 간디, 외증손자 라훌 간디가 대를 이어가며 지배해온 정당이다.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이어진 75년간의 인도 현대사에서 3분의 2 이상을 여당으로 군림해온 명문 정당이기도 하다.

국민회의의 간디 가문은 인도의 독립영웅 마하트마 간디(1869~1948)와는 무관하며, 인디라 네루가 결혼 뒤 남편 페로제 간디의 성을 따르며 얻게 된 이름이다. 네루-간디 가문 이외의 인사가 국민회의 지도자가 된 것은 라지브 간디가 1991년 5월 유세 중 암살당한 뒤 1998년까지 나라심하 라오와 사타람 케스리가 잠시 당을 이끈 이후 24년 만이다.

국민회의는 라지브가 숨진 지 7년 만인 1998년 그의 부인 소냐가 대표에 취임함으로써 다시 간디의 품으로 돌아갔고, 2017년엔 아들 라훌이 대표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라훌은 취임 2년 만인 2019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국민회의는 그 뒤 소냐 임시대표 체제로 운영돼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대표 선거에 네루-간디 가문의 후계자인 라훌은 출마를 포기했다. 그래도 새 대표 체제 출범이 간디 집안과 국민회의의 결별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국민회의=네루-간디 집안의 비즈니스”라는 고착된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많다. 국민회의는 그동안 ‘대중과 유리된 정치 엘리트의 사적 소유물’이라는 모디 총리 등 인도인민당의 맹공에 속수무책이었다. 한때 국민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보증수표였던 간디라는 이름이 거꾸로 점점 부담으로 변한 것이다. 카르게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문제에 대해 네루-간디 집안에 자문하지 않고 “지도”와 “제안”만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국민회의

국민회의가 네루-간디 가문 외의 인사를 새 대표로 뽑은 것은 현재 상황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반세기 넘게 인도 현대사를 좌지우지해온 국민회의는 최근 인도인민당에 밀려 생존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몰렸다. 2014년 총선에선 하원(총 543석)에서 고작 44석 얻는 데 그치며 282석의 인도인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2019년 총선에서도 53석 확보에 그쳐 인도인민당(302석)의 독주를 지켜봐야만 했다.

국민회의가 추락한 것은 힘을 얻어가는 힌두 민족주의에 대항할 만한 설득력 있는 대안 이념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인 1885년 만들어진 뒤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통해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온건 세속적 사회민주주의 성향은 1990년 이후 인도인민당이 주도하는 힌두 민족주의 열정에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라훌 간디가 지지자들과 함께 ‘인도 단결 행진’을 하고 있다. 인도국민회의 누리집
라훌 간디가 지지자들과 함께 ‘인도 단결 행진’을 하고 있다. 인도국민회의 누리집

이에 더해 점점 풀뿌리 대중과 연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국민회의 전·현직 의원들은 간디 가문이 측근으로 구성된 ‘인의 장벽’에 둘러싸여 있고, 그래서인지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이들은 당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8월 국민회의 대변인을 그만둔 제이비르 셰르길은 “선의를 갖고 있고 자존감이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간디 가문의 후계자인 라훌은 정치적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처음부터 정치에 뜻이 없다는 평을 받아온 라훌은 2004년 정치 입문 뒤에도 의무감 또는 가문의 압력에 의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털어내지 못했다. 라훌 베르마 인도 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라훌 간디가 자신을 권력을 다투는 전업 정치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는 대중의 정치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분과 불협화음이 커지며, 많은 이가 당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엔 국민회의 중진 23명이 공개편지를 통해 당의 개혁을 요구했으나, 별다른 조처가 없자 탈당 행렬이 이어졌다. 인도 북동부 아삼주의 수석장관 히만타 비스와 사르마는 국민회의에서 인도인민당으로 갈아탄 정치인이다.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2015년 여름 라훌을 만나 선거전략을 논의하려 했으나 진지하게 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해 탈당했다고 말했다.

‘인도 단결 행진’에 나선 라훌 간디

하지만 최근 들어 라훌은 국민회의 부활을 위해 소매를 걷고 나섰다. 9월 초 “인도 단결”의 기치를 들고 직접 당 지도부를 이끌고 인도 남단 카니아쿠마리에서 북부 카슈미르까지 국토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장정에 나섰다. 다섯달 동안 12개 주를 거쳐 3570㎞를 이동하는 이번 대장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당 관계자는 “우리가 인도를 단결시킬 수 있고 종교·카스트·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도인을 갈라놓는 정치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라는 메시지를 내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우리는 우리 얘기를 하러 가는 게 아니라 들으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훌 간디(왼쪽)가 국민회의의 ‘인도 단결 행진’ 행사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회의 누리집
라훌 간디(왼쪽)가 국민회의의 ‘인도 단결 행진’ 행사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회의 누리집

인도에서는 이처럼 정치인들이 대장정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모은 전례가 있다. 1930년 인도 독립영웅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의 지배에 항거해 380㎞ 행진에 나서 엄청난 국민적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1990년엔 인도인민당이 아요디아 힌두사원 건립을 위한 1만㎞ 대장정에 나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힌두 민족주의의 궐기를 부추긴 이 행사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충돌로 2천여명이 숨지는 최악의 참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인도인민당은 전국정당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번 대장정이 얼마나 성공할지 속단하긴 아직 이르다. 한쪽에서는 소셜미디어가 난무하는 등의 미디어 환경에서 낡은 소통 방식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지만, 어떤 메시지로 국민의 관심을 모으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회의 관계자는 “인도의 영혼을 살리기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며, 대장정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가 정치적 곤궁에 빠져 있지만 여전히 기대를 접지 않는 인도인은 많다. 이들이 힌두 민족주의의 폭주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국정당이기 때문이다. 전체 543개 의석 가운데 53석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엄연한 제1야당이다. 프리얀카르 우파디아야 바나라스힌두대학 교수는 “국민회의는 세속적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세계관을 가진 유일한 전국정당”이라며 “집권은 어렵더라도 적어도 살아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수년 간 추적→네타냐후 긴급 승인→폭탄 100개 투하 1.

수년 간 추적→네타냐후 긴급 승인→폭탄 100개 투하

[포토] 푸바오 보낸 그날처럼…판다 부부 보내는 일본 ‘눈물바다’ 2.

[포토] 푸바오 보낸 그날처럼…판다 부부 보내는 일본 ‘눈물바다’

이란 “이스라엘에 피의 복수”…레바논 파병 가능성까지 꺼내 3.

이란 “이스라엘에 피의 복수”…레바논 파병 가능성까지 꺼내

11m ‘종말의 물고기’ 호주서 잡혔다…말 머리에 갈치 몸통 4.

11m ‘종말의 물고기’ 호주서 잡혔다…말 머리에 갈치 몸통

나스랄라 사망 직후 하메네이 “헤즈볼라 전폭 지원”…파병 가능 5.

나스랄라 사망 직후 하메네이 “헤즈볼라 전폭 지원”…파병 가능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