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1일(현지시각) 타이 방콕에서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는 가운데 왕실을 상징하는 오리 모양 열쇠고리가 판매되고 있다. 방콕/AFP 연합뉴스
타이에서 오리 그림이 그려진 달력을 만들어 판매한 남성이 “국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8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톤마이’라는 별명을 쓰는 26살 남성에게 왕실모독죄로 징역 2년형이 선고됐다고 현지 법률단체 등이 밝혔다. 노란색 오리 그림 달력을 만들어 판매했다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서울 잠실 석촌호수 전시 등을 통해 잘 알려진 노란색 오리 캐릭터 ‘러버덕’은 타이에서는 반정부 저항의 상징이었다. 노란색은 타이 왕실의 색으로, 시민들은 러버덕 고무보트를 들고 시위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섰다.
이 남성은 타이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2020년 연말 체포됐다. 왕실의 권한 강화와 군부의 장기집권에 맞서는 대규모 시위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때다. 경찰은 활동가인 이 남성의 집을 수색해 오리 달력을 발견했고 왕실모독 혐의로 체포했다. 문제가 된 달력에는 개와 함께 걷는 오리, 브이아이피(VIP) 비행기를 날리는 오리, 머리에 피임기구를 쓴 오리 그림 등이 포함됐다. 수사 당국은 “개는 왕실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타이 형법 112조는 왕실을 모독한 사람을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변호인에 따르면 징역형을 받은 남성은 “자신이 달력을 제작하지 않았고 유통만 했으며, 달력의 내용이 형법 112조를 어기는 부분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가디언>은 “시위 이후로 미성년자 284명을 포함해 적어도 1890명이 기소됐다”며 “이 가운데 최소 228명이 왕실모독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2020년 7월 시작된 타이의 민주화 운동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던 주제인 ‘왕실’을 포함해 정치 변화를 요구하며 정국을 뒤흔들었지만, 당국의 단속을 거치며 잠잠해졌다. <가디언>은 “하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1월18일부터는 20대 여성 두 명이 왕실모독죄 폐지 등 사법개혁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 중이다.
<로이터>는 “역대 정부는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왕실모독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인권단체들은 타이 당국이 왕실모독죄 적용에 지나치게 열을 올린다고 비판한다”며 “왕실은 대체로 이 법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2020년 12월1일(현지시각) 타이 방콕 교육부 인근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러버덕’ 머리 장식을 한 학생들이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방콕/AFP 연합뉴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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