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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생방송 부스에 들어와 총격…필리핀 언론인 또 피살 왜?

등록 2023-11-06 15:49수정 2023-11-06 17:26

“1986년 이후 살해된 199번째 언론인”
5일(현지시각) 괴한의 총격을 맞고 숨진 필리핀 라디오 방송 진행자 후안 후말론이 생전 생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페이스북 갈무리
5일(현지시각) 괴한의 총격을 맞고 숨진 필리핀 라디오 방송 진행자 후안 후말론이 생전 생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페이스북 갈무리

필리핀에서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자택에서 생방송 도중 괴한의 총격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네번째로 발생한 언론인 살해 사건으로, 마르코스 대통령은 “언론인에 대한 공격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5일(현지시각) 시엔엔(CNN) 필리핀과 비비시(BBC),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이날 새벽 5시35분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서미사미스(미사미스옥시덴탈)주 칼람바에서 ‘디제이 조니 워커’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라디오 방송 진행자 후안 후말론(57)이 괴한의 총격에 맞아 숨졌다. 당시 후말론은 자신의 집에 설치한 스튜디오에서 페이스북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 지역 매체는 괴한이 청취자인 척하며 방송에서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 있다며 후말론에게 접근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괴한은 곧장 후말론의 머리에 두 발의 총을 쐈고 금목걸이까지 훔친 뒤 달아났다.

“1986년 이후 살해된 199번째 언론인”

총상을 입은 후말론은 의자에 앉은 채 쓰러졌고 이 같은 장면은 생방송으로 모두 송출됐다. 다만, 괴한의 신원을 특정할 만한 모습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 사건 직후 후말론의 아내가 후말론을 즉시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모두 3명으로 2명은 집에 침입했고 1명은 밖에서 오토바이를 탄 채 기다리고 있었다. 집 주변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 등을 확보한 경찰은 검문소를 설치하고 도주한 이들을 체포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6일에는 컴퓨터로 합성한 용의자 1명의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필리핀 당국은 “현재로서는 사건이 후말론의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필리핀 언론계는 다시 들끓고 있다. 필리핀 전국 언론인 연합(NUJP)은 5일 성명을 내고 “이번 공격은 라디오 스튜디오로 쓰이던 후말론의 자택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비난받아야 한다”며 “후말론은 (현 대통령의 부친이자 독재자였던 마르코스 대통령이 ‘피플스 파워’ 시민혁명으로 축출된) 1986년 이후 살해된 199번째 언론인이며 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네번째로 살해된 언론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언론인에 가장 위험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13년 9월 이후 최근 10년 동안만 따져도 언론인 살해 사건은 20건에 이른다. 특히 후말론과 같은 라디오 진행자와, 수도 마닐라 바깥 지역의 언론인들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곤 한다. 올해 5월에도 지역 문제들을 강력하게 비판해온 또 다른 라디오 진행자가 자신의 집 근처에서 괴한의 총격에 맞아 사망한 바 있다.

페르니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부인 마리아 루이스 여사와 함께 2022년 6월30일(현지시각) 마닐라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 선거를 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페르니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부인 마리아 루이스 여사와 함께 2022년 6월30일(현지시각) 마닐라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 선거를 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필리핀 언론인들 둘러싼 환경은

국경없는기자회(RSF)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필리핀은 올해 180개국 가운데 132위를 기록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서 언론인 살해범 기소율을 토대로 취재 환경의 위험도를 매긴 ‘세계불처벌지수’를 보면 필리핀은 올해 8위다. 세계불처벌지수가 만들어지고 16년 동안 필리핀은 줄곧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왔다.

특히 2009년 민다나오섬에서는 지역 언론인 32명을 포함해 주지사 후보 등록을 하러 가던 후보자 가족, 지지자 등 58명이 무장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진 뒤 집단 매장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가디언은 최근 “그간 벌어진 언론인을 향한 공격 가운데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끔찍한 사건”이라며 “무면허 총기, 강력한 씨족이 통제하는 민간 군대가 넘쳐나고 시골 지역에서는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이 필리핀 언론인들이 직면하는 불안 요소들”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인보호위원회는 “마르코스 대통령은 취임 뒤 언론에 대해 보다 유화적인 접근법을 채택했지만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집권 당시 훼손된 언론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짚었다고 시엔엔 필리핀은 보도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5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인에 대한 공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하는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범인들이 신속하게 법의 심판을 받도록”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필리핀 법무부 역시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극악하고”, 후말론의 죽음은 “비극적”이라고 규정했다. 필리핀 법무부는 “헌신적인 언론인에 대한 비열한 폭력 행위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언론 자유의 신성함에 대한 모욕”이라며 “언론인들이 폭력과 괴롭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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