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단” 촉구-무자비한 진압…군 지지철회가 관건
“갸넨드라(국왕)를 이 불길 위에 매달자!”
민주화 요구 총파업 12일째를 맞는 17일 저녁,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시위현장에선 폐타이어를 태우는 연기와 최루탄 가스가 가득한 가운데 국왕의 처단을 촉구하는 극렬구호가 쏟아져 나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절대왕권 강화에 맞선 네팔 국민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통금 연장과 발포, 구타 등 무자비한 시위진압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시위대의 이런 극렬구호는 국왕을 ‘힌두의 신’과 동일시하는 네팔에선 이례적이다.
반왕정 시위는 지난 6일 7개 야당이 공산반군의 묵시적 지원 아래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촉구한 이래,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확대되고 있다. 시위대열에는 교수, 변호사, 의사, 언론인 등 지식인들과 공무원들까지 동참했고, 17일에는 일부 대법관도 가세했다. 대법관의 시위 동참은 지난 1990년 당시 비렌드라 국왕이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양보해야 했던 민주화요구 시위 이래 처음이다.
17일 카투만두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니자가드에서 경찰의 실탄사격으로 다섯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부상자와 연행자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적어도 3천명 이상이 경찰차에 실려 군기지나 임시 수용소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풀려난 사람들은 고문과 구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고, 실종자 수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라고 〈가디언〉은 현지취재를 통해 보도했다.
지난해 2월 정치인들의 부패 철폐와 반군토벌을 내세워 내각을 전격해산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던 가넨드라(58) 국왕의 철권통치는 국내외적으로 고립되면서 14개월만에 파국을 맞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인도의 네팔주재 대사들은 16일 갸넨드라 국왕을 면담해, 야당과의 즉각적인 대화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갸넨드라 국왕은 마지못해 17일 전직 총리 출신의 정치인 2명을 면담했으나 협조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국왕은 내년 4월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종전의 약속을 되플이했고, 야당들은 즉각 거국내각에 권력을 즉각 이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야당들은 민주정부 구성 이전까지 모든 세금 납부 거부와 해외노동자들의 국내송금 중단 등 계속적인 불복종운동을 촉구하는 한편, 오는 20일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시위가 계속되면서 수송중단과 사재기 등으로 식량 등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고 석유 공급이 배급제로 바뀌는 등 네팔 경제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세력의 구심점으로 국민의 신망을 받는 정치지도자가 없다는 점이 이번 네팔 사태의 치명적인 한계로 지적된다. 제1야당인 네팔국민회의당의 당수인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84) 전 총리는 연로하고 병약해, 시위에 나서지도 못하고 집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군이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한 갸넨드라 국왕의 버티기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고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카트만두 주재 한 외교관은 〈로이터통신〉과 회견에서 “사태의 대단원은 군이 반기를 드는 순간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준 야당들도 (대안세력으로)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류재훈 기자, 외신종합 hoonie@hani.co.kr
류재훈 기자, 외신종합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