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반군 “의회 재소집은 왕정유지책” 비난
구심점 없는 야당연합 제 구실 할지도 의문
구심점 없는 야당연합 제 구실 할지도 의문
지난 6일부터 민주화 요구 시위와 유혈진압으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던 네팔이 일단 정상을 회복했다. 시위를 주도했던 야당연합이 25일, 전날 발표된 갸넨드라 국왕의 의회 재소집 약속을 수용해 총파업과 시위 종료를 선언한 것이다. 야당연합은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82) 전 총리를 수반으로 한 과도정부 구성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갸넨드라 국왕의 ‘항복’ 이후 네팔의 민주화가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가장 큰 변수는 전 국토의 3분의 2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공산반군의 움직임이다.
공산반군은 ‘2002년 5월 해산했던 의회를 28일 소집하겠다’는 국왕의 제의를 “왕정유지를 위한 음모”라고 비난하고 있다. 또, 야당의 총파업 종료 선언에 대해서도 ‘큰 실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산반군은 1만~1만5천명의 무장병력과 50만명의 민병대를 확보하고 있다. 프라찬다 반군 최고사령관은 26일 성명에서 이틀 뒤 소집될 의회가 제헌의회 구성 등 정치일정을 보장할 것을 조건으로 주요도시 봉쇄를 일시해제하는 등 압박을 계속했다.
야당연합이 약간 불확실해 보이는 국왕의 의회 재소집 약속을 받아들인 것도 공산반군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11월 공산반군과 야당이 과도정부와 제헌의회 구성 등 민주화 추진 협력을 위한 12개 항의 느슨한 동맹관계에 합의한 뒤, 공산반군은 주요도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등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야당연합을 암묵적으로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일부 야당은 국민들의 시위가 왕정타도와 공화제 요구로 확대되는 데는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진전돼 국왕의 국외 도피 등으로 이어지면 공산반군이 권력의 공백상태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야당연합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야당연합 안의 견해 차도 변수가 될 수 있다. 7개 야당이 연합한 야당연합은 민주화요구 시위를 함께하긴 했지만 왕당파에서 공화파, 공산당까지 정치적 지향이 다양하다. 1990년 이후 13명의 총리가 갈릴 정도로 네팔 정치권은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제1야당인 네팔의회당도 분당된 상태다. 정치권의 내부분란과 부패는 갸넨드라 국왕이 직할 통치에 나서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고령의 코이랄라가 총리에 추대된 것도 지도력을 갖춘 정치인을 찾기 힘든 탓이다.
코이랄라 총리가 이끄는 과도 정부가 제헌의회를 구성하거나, 공산반군과 휴전을 맺고 협상을 통해 이들을 다시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는 정치력을 보일 가능성은 그리 없다는 게 상당수 관측통들의 평가이다. 국왕은 야권의 일정표에 따르겠다고 했을 뿐, 제헌의회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번 민주화 시위가 ‘미완의 민주혁명’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정치권의 분열은 국왕의 복권 시도나 공산반군의 정권탈취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나의 전쟁은 끝났지만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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