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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여전사의 일기,베트남을 적시다

등록 2006-05-30 18:43

베트남전 숨진 ‘당투이쩜’ 30만부 팔려
“엄마…내사랑…” 전쟁 참상·휴머니즘 담아
1930년대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스페인내전을 그린 어네스트 헤밍웨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인 로버트 조던은 전선에서 사랑을 꽃피운 연인 마리아를 떠나보낸 뒤, 교량폭파라는 마지막 임무를 사수하며 죽어간다.

1970년대 인류의 양심을 시험하던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의 한 여의사는 어느날 밤 의약품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가다가 100명이 넘는 미군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야전병원을 지키기 위해 혼자서 총을 쏘며 맞서다 죽어갔다. 그가 병원을 사수하는 동안 부상당한 그의 동료들은 피신해 목숨을 구했고, 이제 그의 죽음을 그의 일기를 통해 기억한다.

“훗날 당신이 사회주의의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햇살 아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 위해 피흘린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해 달라.”

23살에 전선에 뛰어들어 27살에 미군의 공격을 막다 숨져간 여의사의 일기가 36년 만에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혁명의 열정, 전쟁의 비극에 대한 성찰, 고뇌를 솔직히 다룬 북베트남 공산군의 야전병원 외과의사 당투이짬의 일기가 지난해 <당투이짬의 일기>로 출간돼 30만부가 넘게 팔렸다.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미국을 흠모하는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혁명과 전쟁의 생생한 감정이 35년 전 숨진 한 여전사를 통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등 미국의 언론들도 30일 이 일기를 보도하는 등 미국에서도 당투이짬의 열기가 전해지고 있다.

“바로 어제 중상을 입은 21살 병사는 내가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애타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만 나는 도와주지 못했고, 그가 무기력한 내 손 안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눈물만 흘렸다.”

일기는 젊은 독자들에게 역사의 한 시대에 휩쓸려 전투에 나선 베트콩 전사들이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이며, ‘인간의 얼굴을 한 이데올로기’에 떨쳐일어났을 뿐임을 보여준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군의 공격 와중에 앞부분이 사라진 채 남아 있는 이 일기의 첫 부분에서 짬은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사방에서 적군의 총성이 들리는 가운데 이미 이런 광경에 익숙해진 나는 배낭을 매고 달리고, 숨는다. 전장에서 이미 2년을 보냈고 이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1969년 11월26일)라고 썼다. 죽기 이틀 전에는 엄마를 부르며 “내가 이렇게 외로울 때 제발 나에게 와서 내 손을 잡아줘요. 나를 사랑해주고, 내 앞길에 놓인 어려운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줘요”라고 호소한다.


전사의 일기는 정치적인 구호나 영웅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감정과 나약함, 젊은 여성의 사랑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전선에서 헤어진 첫사랑을 부르며 “M, 어디 있어? 우리가 정말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거야? 내 사랑. 왜 나는 내 심장이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라고 절절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을 엄격한 전사로 단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그가 숨진 곳에서 이 일기를 수거한 당시 22살의 미군 정보장교 프레드 화이트허스트는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불태우려 했으나, “이것만은 태우지 말라”는 남베트남인 통역병의 만류로 30년 동안 간직해 왔다. 지난해 그가 미국 텍사스공대에 기증한 이 일기는 결국 당투이짬의 가족에게 되돌아갔다.

지난해 이 글들이 처음으로 신문에 연재됐을 때 베트남인들은 연재된 일기를 오려내 돌려보고 서로 읽어주기도 했다. 당투이짬이 숨진 꽝찌성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지어졌으며, 하노이 외곽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안경환 영산대 베트남학과 교수가 한국어로 번역을 마치고 7월 이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안 교수는 “지난해 베트남의 10대 뉴스로 꼽히기도 한 당투이짬의 일기는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애국심과 전쟁의 잔혹함, 휴머니즘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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