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마다 돌파구 마련…에너지 동등분담 성과도
이번 6자 회담 5차 3단계 회의의 합의 결과와 관련해 한국 쪽 회담 대표단 고위 관계자는 13일 “한국이 무슨 역할을 했느냐는 것에 대해 이번엔 질문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큰 역할을 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한국은 북-미 간의 베를린 합의에 만족하지 않고, 북한으로부터 ‘좀더 많고 구체적인’ 비핵화 의무를 받아내 핵 폐기 단계까지 나아가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를 보면, 결과적으로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모든 핵시설의 불능화라는 북한 쪽 의무를 명기하고 있다. 한국의 애초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된 셈이다.
여기에는 고비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우선 초기단계 이후의 조처를 에너지 지원과 연계한 것에 대해, 회담 대표단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처음부터 반드시 달성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와서 달성한 게 성과급 제도 도입”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해 폐쇄조처만 하고 ‘불능화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끌수록 매달 받는 양이 줄어들도록 ‘설계한’ 것이다. 불능화 단계까지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에너지 규모 100만t(중유 상당)은 ‘총량’ 기준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동등분담 원칙’을 명기한 것도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한국 쪽 대표단은 동등분담 원칙을 명기할 경우 회담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는 다른 나라의 만류에도 “앞으로 이행되지 않는 합의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재원 분담이 명확하지 않으면 합의가 어렵다”며 목표를 관철시켰다. 이는 북의 비핵화 의무와 상응조처의 문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회담 관계자는 전했다.
실제 11일부터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한국 쪽이 수정안을 내놓아 돌파구를 마련하는 기초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대표단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 안을 미국·중국·러시아 모두가 지지했기 때문에 그 무게를 가지고 북한과 이야기하고, 북한이 우리가 제시한 안에 대한 의견을 기초로 한-미가 공동 조율한 뒤 북과 협의해 이익의 균형점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한-미-중, 한-미-러, 한-미-일 등 3자 협의는 물론, 북한 및 미국 등과 수많은 양자협의를 주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는 북한이 받을 보상으로 한국 쪽이 2005년 중대 제안으로 내놓은 200만㎾ 제공을 문서에 넣자고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쪽 대표단은 “200만㎾는 비핵화 완료 뒤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옵션으로 거론한 것”이라며 “초기단계에서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이번 이행 합의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쪽이 제안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토대가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이 북한에 제안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한국 쪽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의 동결 해제를 6자 회담 개최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워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BDA 실무협의’를 별도의 트랙으로 분리해 옆으로 치워놓은 것도 ‘포괄적 접근방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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