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투올슬렝 대학살 박물관에서 1일 한 여성 방문객이 캉케크이우 전 투올슬렝 감옥 소장의 사진을 카메라로 찍고 있다. 프놈펜/AP 연합
고문 악명 감옥소장 ‘두흐’ 반인륜 범죄 이유 구금 명령
‘170만명 학살’ 책임자 처벌 전무…3년간 5명 재판 예정
‘170만명 학살’ 책임자 처벌 전무…3년간 5명 재판 예정
악명 높은 크메르루주 감옥의 최고책임자에 대한 국제재판정의 단죄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크메르루주 국제재판정은 ‘두흐 동지’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캉케크이우(65·사진) 전 투올슬렝 감옥 소장을 자체 교도소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캄보디아 언론들이 31일 보도했다. 여러 나라 판사들로 구성된 법정은 이날 ‘두흐가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구금 이유를 제시했다.
1975~79년 크메르루주 통치 기간 수도 프놈펜의 투올슬렝 감옥에서, 두흐는 적어도 1만7천여명의 수감자를 인두로 지지거나 인분을 먹게 하는 등 잔인하게 고문하며 감독해 악명이 높았다. ‘규칙 위반 때 채찍질 10번이나 전기쇼크 5번을 받는다’는 게 당시 이 감옥의 대표적 처벌 기준이었다. 수감자 가운데 많은 수가 감옥에서, 혹은 이른바 ‘킬링필드’로 알려진 츠엉엑에서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
두흐는 수감자들의 사진을 찍어 입소와 사망 때의 장면을 꼼꼼히 기록하도록 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고문 때문에 목구멍이 찢어지거나 불구가 된 주검들,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한 주검들마저도 사진으로 남겼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일 ‘두흐 동지에게 마침내 정의가’라는 기사로 이 소식을 전하고 “생존한 크메르루주 지도층에 대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 절차”라며 재판부의 결정을 환영했다.
두흐가 지도자였던 폴 포트나 군 최고사령관 타 목 등 이미 세상을 떠난 크메르루주 지도부에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도 높다. 도피 생활이 발각된 초기 그는 “사람을 죽인 데 대해 사과한다”며 “국제재판을 받겠으며 다른 이들을 위한 증거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 조사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하는 등 판이한 태도를 보였다. 1979년 1월 베트남이 캄보디아 북부로 진입해 크메르루주 소탕에 나서자,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채 20년 동안 이름을 바꿔가며 숨어 살다가 1999년 붙잡혔다. 이후 그는 지난 8년 동안 군사감옥에 구금돼 지냈다.
두흐는 크메르루주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지식인 출신이다. 20대 초반부터 수학교사로 일하다 부패한 친미정권의 정치상황에 반발해 1967년 캄푸치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는 등 재판도 없이 2년형을 살고 나와 크메르루주 반군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메르루주 정권 시절 정부에 살해된 사람은 당시 인구 4분의 1인 약 17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이 사건으로 처벌된 사람은 없으며, 국제재판정이 이달부터 앞으로 3년 동안 아직 살아 있는 관계자 5명을 대상으로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두흐는 그 첫 피의자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캉케크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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