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세속주의 수호” 경고…정면충돌 가능성 고조
압둘라 귈 터키 외무장관이 28일 의회의 대통령 선출 3차 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투표를 하루 앞둔 27일 세속주의 보루 구실을 자임해온 군부가 또다시 강력한 경고음을 내 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챙긴 이슬람주의 정부와 정면충돌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야샤르 뷔위카니트 터키 군사령관은 이날 터키공화국 수립의 분기점이 된 그리스와의 사카리아 전투 85돌을 앞두고 군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터키의 세속주의가 ‘악의 중심’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뷔위카니트 사령관은 “터키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사악한 계획이 날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며 “군은 그런 공격에 겁먹지 않고 1923년 이후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터키를 굳건히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뷔위카니트 사령관의 이런 메시지는 이슬람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귈 장관의 대통령 선출을 겨냥한 것이다. 군부는 지난 4월 귈 장관이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도 세속주의 훼손을 지적하며 행동에 나서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세속주의 지지 세력인 군부와 야권, 법조계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귈 장관의 대통령 당선을 막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이미 총선 압승을 통해 국민들의 신임을 재확인한 상태다. 지난 4월과 같은 절차적 문제점도 없다.
당선된 귈 대통령 취임을 막기 위해 군부가 세속주의 보호를 내걸고 행동에 나설지 주목된다. 에르도안 총리는 21일 대통령 1차 투표가 끝난 뒤 “군부는 제자리를 지켜야 하며, 각급 기관은 헌법이 정한 데 따라 제구실을 수행해야 한다”며 군부의 정치 개입 차단에 나섰다. 유럽연합이 군부의 정치 개입을 민주주의 후퇴로 여기는 것도 변수다. 유럽연합 가입이 터키의 숙원이기에 군부도 예전처럼 ‘과감하게’ 행동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
귈 장관은 1980년대 이슬람개발은행에서 근무하다가 91년 정계에 들어와 줄곧 이슬람주의 정당에 몸담았다. 그는 외무장관으로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의 길을 열었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도 대미 협상을 맡았다.
터키는 전체 국민의 98%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오스만제국 붕괴 후 1923년 케말 아타튀르크가 터키공화국을 세운 뒤 줄곧 종교의 정치와 일상 개입을 차단한 세속주의를 유지해 왔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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