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이프티카르 차우드리 전 파키스탄 대법원장이 24일 이슬라마바드 자택 주변에 모여든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슬라마바드/AP 연합
전 대법원장 포함…질라니 총리 ‘무샤라프 압박 신호탄’
파키스탄 ‘반무샤라프’ 세력의 구심점인 이프티카르 차우드리 전 대법원장 등 판사 61명이 143일의 긴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24일 저녁 264 대 42의 압도적 표차로 선출된 유수프 질라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연정의 첫 ‘성과’다.
질라니가 당선 연설에서 “가장 먼저 해임 판사들의 가택연금을 즉각 해제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말하자 집권당 의원들은 환호했다. 정식 취임(25일) 전이라 그의 발언은 공식 지시가 아니었지만, 수도 이슬라마바드 치안당국의 반응은 신속했다. 차우드리 대법원장 자택 등을 에워쌌던 철조망은 이내 사라졌고, 병력들은 지체없이 철수했다고 일간 <새벽>(Dawn)이 전했다. 판사들에게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자, 법조계와 시민단체들은 이를 대환영했다. 현지 방송들은 차우드리가 가족과 함께 난간에서 손을 흔들며, 집 주변에 몰려든 수천 군중을 향해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온 파키스탄 인민에게 감사한다”고 외치는 모습을 전했다.
‘반무샤라프’ 성향의 거대 연정이 출범한 데 이어 법조계의 세 결집도 본격화해,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집권 연정의 한 의원은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판사들을 곧 복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무샤라프가 지난해 11월 대통령 당선을 확정짓기 위해 해임했던 판사들이 복귀하면 그의 대통령직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무샤라프가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의회해산권까지 포기하면서 막으려고 했던 게 사법부의 ‘복원’이다. 24일 의회 주변에선 무샤라프가 곧 사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질라니 총리가 이어 헌법 개정을 추진하면 파키스탄 정국은 최대 고비를 맞게 될 전망이다. 일간 <더네이션>은 25일치 사설에서 “이전에도 의원내각제에 충실하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헌법 개정 시도는 있었지만 실패했다”며 “무샤라프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질라니를 총리로 선임한 주된 이유는 갖은 압력에 저항했던 그의 이력 때문”이라며 양쪽의 대격돌 가능성을 예고했다.
한편, 피살당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 아시프 자르다리는 자신의 총리 취임을 위해 질라니를 ‘임시 총리’로 내세웠다는 의혹에 대해 “질라니는 5년 임기를 채우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파키스탄인민당(PPP) 출신 총리 가운데 부토 가문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질라니가 처음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