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사카슈빌리(사진)
그루지야 국민 “러시아와 전쟁 탓 큰 고통”
“닷새 동안의 전쟁으로 5년 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었다.”
지난달 남오세티야를 침공해 러시아와 전쟁을 촉발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이 결국 ‘사임’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다비드 우수파슈빌리 그루지야 공화당 대표는 15일 “대통령의 착오로 국민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며 사임을 촉구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이날도 사카슈빌리는 여전히 서방의 지지를 호소하며 뛰어다녔다. 그는 야프 데 호프 스헤페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을 만나 “그루지야가 유럽과 한가족이 되기 위해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에프페>(AFP) 통신은 미국 관리의 말을 따 “그루지야가 나토에 가입하려면 더 긴 여정이 필요하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요즘 사카슈빌리는 지도자가 잘못 대처할 경우 국가를 재앙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회자되고 있다. 사카슈빌리의 측근이던 이라클리 오크루아슈빌리 전 국방장관까지 그의 “무책임한 지도력”을 비난했다.
철저한 친미주의자인 그의 인생 역정은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약소국의 지도자로서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사카슈빌리는 소련 붕괴 뒤, 미국 국무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컬럼비아대 법대와 조지워싱턴대 법대에서 각각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뉴욕의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재학 시절, 그루지야어와 러시아어 외에도 5개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1995년 귀국 뒤 승승장구한 사카슈빌리는 2003년 ‘장미혁명’으로 친서방 정권을 세우며, 그루지야를 서방의 울타리에 넣으려 했다. 그루지야가 이라크전에 세번째로 많은 군대를 파병한 것도 서방에 편입되려는 사카슈빌리의 염원을 보여준다. 이런 행위들은 서른여섯에 대통령이 된 젊은 지도자의 추진력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닷새 동안의 전쟁은 이런 사카슈빌리의 염원이 심각한 판단착오임을 보여줬다. 러시아는 다시 힘을 회복했고, 러시아와 등지고 싶지 않은 서방국들의 ‘허약한’ 연대가 확연히 드러났다. <시엔엔>(CNN) 방송은 “유럽은 ‘장미혁명’으로 주목했던 사카슈빌리를 요즘은 고집 센 지도자로 바라보고 있다”며 “그가 서방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판”이라고 전했다. 약소국이 어느 한쪽에 ‘집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보여준 것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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