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주도 멜버른의 북동쪽 킹레이크 인근 소나무숲과 관리시설이 8일 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킹레이크/AP 연합
오스트레일리아 최악의 산불
“태평양 엘니뇨·라니냐 현상과 밀접한 관련” 분석
“태평양 엘니뇨·라니냐 현상과 밀접한 관련” 분석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의 주도 멜버른에서 북동쪽으로 90여㎞ 떨어진 긴번의 주민 존 라이언은 7일 푸르던 하늘이 갑자기 검은 연기로 뒤덮이는 것을 목격했다.
10분 뒤 집 주변의 수풀이 모두 화염에 휩싸였다. 그는 이웃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 몸을 피해 겁에 질린 채 떨고 있었다. 다행히 불길이 집을 건너뛰는 것을 확인한 뒤, 그와 이웃들은 곧장 집 밖으로 나와 건물에 붙은 깜부기불을 모두 꺼뜨렸다. 결국 라이언의 집은 무사했지만 이웃집은 무사하지 못했다. 그는 현지 라디오 방송의 인터뷰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 타버렸다”며 “남아 있는 게 없다. 죽은 동물 사체가 곳곳에 널려 있다”고 말했다.
희생자 규모가 100명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번 산불은 기상이변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빅토리아주는 해마다 여름이면 크고작은 산불이 끊이지 않는다. <에이피> 통신은 유분이 많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인화성이 워낙 강한데다, 최근 들어 폭염·가뭄 등으로 화재가 잦아졌다고 전했다. 인적이 드문 삼림에서 화재가 일면, 초기 진화 작업이 어려워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최근 북부의 폭우, 남동부의 폭염과 가뭄 등 이례적인 기상이변이 나타나고 있다. 1~2월 평균 최고기온 26℃, 강수량 48㎜ 수준인 멜버른 지역에선, 근래 한낮 기온이 40℃를 넘었고 한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았다. 이런 기상이변은 태평양의 엘니뇨 또는 라니냐 현상 등 해수면 온도의 변화와 밀접한 것으로 기상학자들은 보고 있다. 인도양 동부의 기상 변동인 ‘다이폴’을 원인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시속 100㎞가 넘는 강풍도 화재 피해를 늘렸다. 시시각각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서, 화마가 코앞에 닥쳐 죽음을 각오했다가 불길 방향이 바뀌어 목숨을 건진 주민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바람이 전방위적으로 불꽃을 번지게 만들어, 진화작업을 어렵게 하는 동시에 피해를 키웠다.
일부 지역에서는 방화에 의한 산불도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빅토리아주 인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숲에 불을 놔 주택 몇십채를 불에 타게 한 30대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 주 당국은 “이런 피해를 재미로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다. 최고 25년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천명의 소방대원과 군 병력이 물을 뿌리며 진화에 나섰지만, 바짝 마른 나무줄기를 삼키며 포효를 떨치는 화마를 완전히 제압하진 못하고 있다. 다만 9일부터 빅토리아주 일대에 비가 올 것이란 기상청 예보가 실낱같은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비 예보가 있었던 지난 1일에도 사실상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완전 진화에 필요한 만큼의 비가 내리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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