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필리핀 마닐라 주재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한 시위자가 아웅산 수치의 젊은 시절 초상화 앞에 노란 국화 한 송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마닐라/AP 연합
18개월 동안…내년 총선 정치활동 봉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에게 11일 18개월의 가택연금 명령이 내려져 또다시 구금생활이 이어지게 됐다.
미얀마 특별법정은 이날 양곤 인세인교도소에서 열린 재판에서 수치에게 가택연금 규정을 어긴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그러나 내무부 장관이 5분 뒤 법정에 들어와 군사정부 최고지도자 탄슈웨 장군이 내린 명령서를 큰 소리로 읽었다. 탄슈웨 장군은 명령서에서 “수치가 미얀마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며, 나라의 평화와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형량을 징역 3년형에서 가택연금 18개월로 낮춘다”고 밝혔다. 수치의 집에 몰래 들어가 이번 사건을 촉발한 미국인 존 윌리엄 예타우에게는 징역 7년형과 강제노동형이 선고됐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외국 기자들에게 재판 취재를 허용했으며, 외국 외교관들의 재판 방청도 허용했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18개월의 가택연금 조처를 내린 것은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수치의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미얀마 군사정부가 수치를 재판에 회부해 내년 총선에서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수치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1990년 총선에서 당시 수치가 가택연금된 상태에서도 전체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하며 압승한 바 있다. 군정은 총선 직후 선거를 무효화한 뒤 지금까지 정권을 이어가고 있다. 수치가 18개월 동안 다시 가택연금에 들어가게 되면 내년 총선 동안 출마는 물론 유세조차 할 수 없다.
최근 20년 동안 14년가량을 구금 상태로 지내온 수치는 지난 5월말 가택연금 시한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5월3일 예타우의 자택 무단잠입 사건이 발생해 재판에 회부됐다. 수치는 이번 판결로 네번째의 가택연금에 들어가게 됐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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