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가 19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오물이 묻은 채 걸려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대변인 “선관위 결정나면 받아들이겠다”
클린턴·브라운 등 “법 절차 따라야”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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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시비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대선의 결선투표가 다음달 7일 치러진다. 지난 8월 이후 줄곧 자신의 당선 확정을 주장해오던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끝내 굴복해 얻어진 날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선투표 시행 결정은 정당하며, 합법적이고 합헌적인 것으로 아프간이 민주 사회로 가는 길을 넓혀줄 것이다 ….” 카르자이 대통령은 20일 수도 카불에서 한 내외신 합동 기자회견에서 20분 넘게 마이크를 잡았다. 장황한 카르자이의 연설은 한마디로 ‘결선투표 수용’이었다. 카르자이는 “지금은 조사를 논의할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 안정과 국가적 통합을 향해 나아갈 때”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자신을 향한 부정선거 책임론을 피하겠다는 말로 읽힌다.
이날 결선투표 날짜도 확정됐다. 아프간 선관위는 “재검표 결과 발생한 무효표로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한 카르자이 후보의 득표율이 49.67%에 그쳤다”며 “과반 득표자가 없어, 다음달 7일 결선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초 선관위는 카르자이가 54.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9일 유엔이 지원하는 아프간 선거감독기구인 선거민원위원회(ECC)는 재검표 결과 투표소 210곳의 표가 무효 처리됐다고 밝혔으며, 결과 보고서를 선관위에 통보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후퇴’엔 미국과 서방의 압력이 컸다. 선거 이후 유령 투표소가 있었다거나 유권자 수보다 많은 투표 수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도 미국은 공식적 의견 없이 ‘침묵’했지만, 결국 정당성 없는 아프간 정부 건설은 아프간 문제를 더 꼬여가게 할 뿐이란 판단에 이르렀다. 존 케리 상원의원도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새 아프간 정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미군의 아프간 추가 파병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투병을 파병하고 있는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전날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거민원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유엔도 카르자이 대통령이 헌법을 따라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제때 결선투표를 치른다 해도 ‘산 넘어 산’이다. 결선투표도 부정선거로 얼룩질 수 있다. 개표를 거쳐 차기 대통령 확정이 연내 이뤄질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미국과 서방에선 카르자이 대통령과 1차 대선의 2위인 압둘라 압둘라 후보가 타협해 연정을 구성하는 방안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의견이 모락모락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기원 류이근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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