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된 ‘레드셔츠’ 군사지도자 의식불명
정부, 저격 부인…시민들 “내전 같다”
정부, 저격 부인…시민들 “내전 같다”
타이 유혈사태 재연
13일 저녁 7시께 타이 방콕 시내의 실롬 지하철역 부근. 반정부 시위대인 ‘레드셔츠’의 군사지도자를 자처하던 카띠야 사왓디폰 육군 소장은 <뉴욕 타임스>의 토머스 풀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풀러 기자는 정부군이 바리케이드를 헤치고 레드셔츠가 점거중인 라차쁘라송 거리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다. 카띠야 소장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히 답했다. 바로 그다음,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그를 쓰러뜨렸다. 풀러 기자는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며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렸고 총탄은 내 머리 위를 지나 카띠야 소장의 이마에 맞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카띠야 소장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생존 확률은 희박하다.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민간인 6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으며, 방콕은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방콕의 한 노동자는 “마치 내전 같다”며 “도시 한복판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이라고 <에이피>(AP) 통신에 말했다.
14일 타이 군과 반정부 시위대가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카띠야 소장 저격 사건이었다. 카띠야 소장은 레드셔츠 시위대 내에서도 가장 강경파로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레드셔츠의 군사지도자를 자처하며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을 주도한 그는 군경에 총격을 가하는 일명 ‘블랙셔츠’의 지도자라는 의혹도 받아왔다. 타이 군은 그를 탈영병으로 분류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카띠야 소장은 저격당한 날 낮 <방콕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나를 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타이 정부가 카띠야 소장 저격을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타이 군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시위대 점거 지역에 저격수를 배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이 정부는 이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타이 정부와 레드셔츠 시위대는 최근 타협에 근접해 방콕의 평화가 찾아오는 듯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다시 뒤집혔다.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시위대 해산을 조건으로 11월14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제안했지만, 카띠야 소장을 비롯한 시위대 내 강경파 주도로 지난달 10일 유혈사태에 대해 아피싯 총리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아피싯 총리도 조기 총선 조건을 거둬들이면서 상황은 악화 일로로 가고 있다. <방콕 포스트>는 시위대 지도부 내부에서는 온건파에 속하는 위라 무시까퐁이 지도부 사임을 발표하는 등 분열 조짐도 있다고 전했다.
타이 방콕에 남은 시위대는 지난 3월 몇만명에서 14일 수천명 수준까지 줄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쌓고 죽창으로 무장하는 등 태도가 점점 강경해지고 있다. 레드셔츠 시위대의 지지를 받고 있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이날 군대 철수를 요구했다. 탁신 전 총리는 성명을 통해 “아피싯 총리는 추가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국가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충돌이 지난달 10일 일어났던 대형 유혈사태 수준으로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시 타이 군은 시위대 강제해산을 시도하다가 시위대와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최소 25명의 희생자가 나왔다.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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