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 수시간만에 ‘항전결의’ 무너져
느슨한 조직력 탓 버티기 한계
느슨한 조직력 탓 버티기 한계
두 달 넘게 강력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레드셔츠 지도부는 19일 정부 진압작전이 시작된 지 수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투항 결정을 내렸다.
레드셔츠 지도부는 이날 “인명 피해를 줄여 내일을 기약하자”고 투항 이유를 밝혔다. 애초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지도자 중 하나인 나타웃 사이끄아는 이날 오후 마지막 집회에서 “우리들 레드셔츠에게 가해지고 있는 잔혹함을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다시 싸우기 위해 우리의 힘과 결의를 보존하자”며 눈물로 호소했다. 또다른 지도부인 짜뚜폰 프롬판은 “더이상 이런 야만에 저항할 수가 없다”고 말해 야유를 받으면서도 “형제자매여, 지금은 시위를 끝낼 것을 간청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 지도부는 집회 뒤 경찰에 자진 투항했지만, 상당수 시위대들은 시내 곳곳으로 흩어져 격렬한 시위를 계속했다. 일부에서는 이날 온건파 지도부가 이탈하고 강경파 지도부가 남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지도부의 양상은 레드셔츠라고 불리는 반독재민주주의 연합전선(UDD)이 강력한 대오를 갖춘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시위대의 대부분이 북부, 북동부 농촌지역 출신의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자들이지만, 여기에 민주화와 군부 개입 축소를 바라는 도시 지식인들이 가세한 느슨한 형태의 반정부 조직에 가깝다.
지도부의 출신성분도 다양하다. 위라 무시까퐁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타이락타이당’ 최고위원 출신이고, 웽 또찌라깐은 의사 출신의 공산당원으로 선동적인 달변가이고, 아리스만 퐁루앙롱은 80년대 팝송가수 출신이다. 카띠야 사왓디폰은 육군 소장 출신으로 레드셔츠의 무장세력을 이끌던 강경파 지도자였지만, 저격을 받아 17일 숨졌다.
지난 3월 방콕에서 시위를 시작할 때 시위대의 중심적 요구사항은 정권 퇴진과 조기 총선 실시였지만, 정부 쪽과 두 달 넘게 밀고당기는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시위대는 분열됐고, 궁극적인 시위 목적도 실종되다시피 했다. 지난해 4월 아세안 정상회의를 저지할 때만 해도 수십만명에 달하던 시위대는 지난 3월 100만명 집결을 목표로 했지만 수만명에 그쳤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