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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일본 사회에 번지는 '자숙 모드'…“경제침식 우려”까지

등록 2011-04-02 12:15수정 2011-04-02 18:35

결혼식 연기, 벛꽃 놀이 자제, 기업광고 격감 확산
관료 “영업 자숙, 지방선거 연기 자숙 불필요”강조
 일본어에는 ‘자숙’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도 자숙이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 말이 자주, 때로는 집단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1989년 일본의 왕인 히로히토(쇼와)가 죽었을 때 일본 사회 전체가 ‘자발적으로 근신한다’는 의미의 ‘자숙 모드’에 빠졌다. 3·11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이라는 전후 최악의 재난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 사회가 또 다시 이상한 집단 자숙 모드에 빠져 있다.

 <지지통신>은 최근 결혼식 연기, 벚꽃놀이 자제, 기업 방송광고 격감 등 일본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 자숙 모드가 도쿄 등 비재난 지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지자체는 이런 자숙 모드의 연장으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선거 연기를 주장하기도 한다.일본의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으로 4선 도전에 나선 이시하라 신타로(78) 도쿄도지사는 “한 잔 마시고 환담할 때가 아니다”라며 벚꽃놀이 자숙을 요구했다.

 화려한 벚꽃이 만개하고 기업의 신입사원 입사식 등이 시작되는 3월 말~4월 초를 맞이해서도 일본 전체가 침묵에 빠져든 것이다. 일본에서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외국사람들 눈에는 지나친 몸조심으로 비치기도 한다.

 일본 전체에서 도쿄전력의 ‘계획 정전’이 실시되고, 긴자와 아키하바라 등 도쿄의 번화가의 화려한 네온사인와 간판의 불빛도 화려함을 잃고 있다.

 도쿄의 벚꽃 명소인 우에노 공원에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명당자리를 잡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진도리’(자리잡기) 하는 장면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지만 올해는 이런 광경이 눈에 띄지 않는다.

 도쿄의 인기 있는 핫포엔에서는 결혼식과 피로연의 연기 신청이 60건이 넘는다고 한다. 내빈이 피해지역인 도호쿠에서 재난을 당한 경우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이런 시기에 축하 행사는 자숙하고 싶다”는 것이다. 도시락 등을 배달하는 업체들에선 졸업식의 사은회, 환영환송식용 예약이 취소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피하고 싶다” “전차가 움직이지 않아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등을 이유로 입사식을 취소한 경우도 있다. 하나미(벚꽃놀이)로 가장 바쁜 시즌이지만 예약은 예년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간토지방에서 약 500점의 이자카야(대중 술집)를 운영하고 있는 몬테로자의 경우, 재난 이후 매출이 20~30% 줄었다. 오사카와 나고야 등지에서 이자카야체인점을 경영하는 ‘마르셰’도 재난 이후 예약 취소가 잇따라 전년에 비해 매출이 3% 가량 줄었다.

 텔레비전 광고도 크게 줄었다. 시엠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도쿄의 민방 5개사는 14일 저녁부터 광고를 재개했으나 광고주가 자숙을 요청해서 배려와 인사 등을 테마로 한 공익광고를 만드는 회사인 에이시 재판의 광고가 급증했다고 한다. 16일 아침까지 방송된 8173건 중 77%를 공익광고가 차지했다가 최근 들어 평상시 광고로 돌아오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활기차게 말하는 목소리로 유명한 한 통신판매회사 사장은 목소리를 낮춘 채 상품을 팔려는 것인지 위로와 위문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는 이상한 판매를 하는 모습도 재난 초기에 눈에 띄었다.

 이런 자숙 모드는 국가 위기사태 때나 큰 일이 났을 때 튀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 국민들의 자발적 몸조심의 행동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측면도 있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렌호 절전개발담당상은 1일 기자회견에서 이시하라 지사의 벚꽃놀이 자숙 요청에 대해 “권력으로 자유로운 행동이나 사회생활을 제한하는 것은 최저한으로 머물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일본 편의점의 심야영업을 자숙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야간의 전력은 현단계에서 상당부분 여유가 있다. 편의점이나 자판기의 야간 조명은 치안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며 심야영업 자숙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30일치 ‘쓰나미 이후 일본은 자숙이라는 새로운 강박관념에 휩쓸렸다’는 도쿄발 기사에서 “많은 일본 국민은 지진이나 쓰나미의 희생자에 대한 조의의 마음으로 일상의 활동을 축소하고 있어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이 걱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자숙은 우선 전력의 절약이라는 형식을 띠어 일본 국민이 전등 끄기, 엘레베이터, 난방, 화장실 좌석 난방까지 끄게 됐다며 일본 국민 모든 층에서 생활의 자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할인 카메라점의 안내 음성과 가라오케 점의 입출입, 고교야구 응원, 도쿄도 지사 후보 마이크 음성까지 ‘자숙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자숙이 지나침을 시사하면서 기업과 학교 행사 취소가 일본 경제 전체의 60%에 이르는 소비 지출을 크게 줄여 “원래 정체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경제에 침식효과를 가져와 도산을 급증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타야마 요시히로 총무상은 1일 지바현 우라야스시의 지방선거 연기를 요청하며 투개표 사무를 하지 않을 뜻을 밝힌 데 대해 “선거는 권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프로세스다. 자의성이 작용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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