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메드베데프 회담 내용
핵실험 중지 등 요구에 북 “회담 먼저”
한·미·일, 러·중에 대북압박 요구할 듯
핵실험 중지 등 요구에 북 “회담 먼저”
한·미·일, 러·중에 대북압박 요구할 듯
24일 러시아 시베리아 울란우데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뚜렷한 디딤돌을 마련하지 못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날 회담에서 전제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고 6자회담 과정에서 핵물질 생산과 핵실험을 유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취해온 기본 방침이다. 그러나 한·미·일은 이런 방식의 6자회담 재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미·일은 6자회담에서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려면, 회담에 앞서 북한이 ‘비핵화 선행조처’라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러시아 방문 직후인 지난 12일 내·외신 브리핑에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포함한 모든 핵 활동의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중단 확인 등을 6자회담에 앞서 북한이 해야 할 비핵화 선행조처로 내건 바 있다.
이런 비핵화 선행조처는 지난 3월 러시아 쪽이 북한에 먼저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6자회담 러시아 수석대표인 알렉세이 보로답킨 외무차관은 당시 평양을 방문해,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지와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의 영변 핵시설 복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관련 시설에 대한 접근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때도 북한 외무성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러시아 측이 제기한 기타 문제들도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전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9·19 공동성명의 이행 과정에서 논의·해결될 수 있다”며 ‘회담 재개 먼저’를 주장했다.
러시아가 이날 김 위원장의 태도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에 비춰 러시아도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러시아는 비록 비핵화 선행조처를 북쪽과 협의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선행조처 없이 6자회담은 안 된다는 한·미·일과는 달리 6자회담 조기 재개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발언권을 행사할 무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전제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라는 북한 방침에 암묵적으로 힘을 실어준 것일 수도 있다.
6자회담 재개 여부는 결국 후속 북-미 대화와 2차 남북 비핵화 회담 등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북한은 먼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도 선결조건으로 이를 걸기보다는 행동 대 행동의 상응 조처로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는 협상의 묘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일은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면서 북한이 비핵화 선행조처에 나서도록 러시아와 중국도 대북 압박에 동참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5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도 이런 입장이 우다웨이 중국 수석대표에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