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피플파워’ 30주년에 독재 그림자
마르코스 아들 5월 부통령후보로
여론조사서 지지율 26% 1위
2022년엔 대선후보 출마 유력
사과커녕 독재시절 “황금시대” 묘사
독재정권 희생자들 “낙선운동”
마르코스 아들 5월 부통령후보로
여론조사서 지지율 26% 1위
2022년엔 대선후보 출마 유력
사과커녕 독재시절 “황금시대” 묘사
독재정권 희생자들 “낙선운동”
2월25일은 필리핀 국민이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비폭력 시위로 물러나게 만든 ‘피플 파워’ 발생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최근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 독재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다.
마르코스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59) 상원의원은 오는 5월9일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나섰는데, 최근 여론조사 결과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소셜 웨더 스테이션’(SWS)이 유권자 1200명을 대상으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한 조사에서, ‘봉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르코스 주니어는 지지율 26%로 선두로 치고 나왔다. 필리핀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 뽑는다.
그의 아버지인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해 1986년까지 독재를 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만에서는 국민당 정권이 비상조치와 계엄령을 통해 철권통치를 했다. 피플 파워 시위 뒤인 1987년 2월 필리핀 정부는 또다른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새 헌법 제정으로 6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했으며, 민주화 요구가 분출했던 한국에서도 그해 10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 개정안을 공표했다.
마르코스 일가가 하와이로 쫓겨날 당시 부인 이멜다가 소유한 구두 3000켤레와 방탄 브래지어가 나올 정도로 일가의 부정축재는 전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일가가 국외로 빼돌린 재산만 50억~1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부정축재 재산 환수를 위해 이멜다가 갖고 있던 보석 760여점을 경매한다고 밝혔는데, 경매회사가 추정한 평가액이 최소 10억페소(약 254억원)에 이르렀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아버지가 대통령을 지낼 때 20대의 나이에 루손섬 북서쪽 아버지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의 주지사를 했다. 이멜다도 메트로마닐라의 주지사를 지냈을 만큼, 가족들은 마르코스 독재정권 때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이제 독재정권 시절을 필리핀의 “황금시대”로 묘사하며 가문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현지 <에이비에스-시비엔>(ABS-CB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독재정권 시절에 필리핀이 발전했다며 자신은 사과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필리핀에 깔린 수천㎞ 도로에 대해 사과해야 하나? 쌀농사 자급자족 달성에 대해 사과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는 아버지 시절 계엄령과 인권탄압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요즘 계엄령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의 관심은 일자리와 교통 같은 문제들이다”라고 말했다. 이멜다는 아들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이번 부통령 선거를 발판으로 2022년 대선에 나설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아버지의 남아 있는 지지층과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젊은층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은퇴한 교사 이멜다 오르두냐(70)는 <뉴욕 타임스>에 “마르코스 정권 시절 생활이 훨씬 나았다”며 “평화와 권위가 있었고 부패는 적었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가문의 부활은 예고된 일이다. 가문의 어느 누구도 마르코스 정권 시절 인권탄압과 부정축재로 처벌받지 않았다. 가족은 피플 파워 뒤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1989년 마르코스가 숨진 뒤인 1991년에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허가로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이멜다는 1992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하원의원, 큰딸은 2010년부터 일로코스 노르테의 주지사를 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가족 등을 잃은 희생자들은 마르코스 주니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마르코스 정권 때 살해당한 사람은 최소 3200명, 고문당한 사람은 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필리핀 부통령 후보 지지율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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