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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게이·레즈비언은 목숨을 걸어라

등록 2016-03-11 18:46수정 2016-03-12 11:29

2010년 9월28일 자카르타의 일본문화센터 앞에서 동성애 영화 페스티벌 반대를 외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단체 회원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요즈음 정치·종교·언론이 떼거리로 나서 LGBT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10년 9월28일 자카르타의 일본문화센터 앞에서 동성애 영화 페스티벌 반대를 외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단체 회원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요즈음 정치·종교·언론이 떼거리로 나서 LGBT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64) 인도네시아 LGBT 박멸
‘불법,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비롯한 79개국’ ‘사형,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비롯한 10개국’ ‘증오살해 희생자, 중남미 770명(2013년) 브라질 1341명(2007~2012년)’ ‘스페인 시민 88%가 수용. 독일 87%, 미국 60%, 일본 54%, 한국 39%’ ‘세계 인구 1억7500만명’ ‘미국 인구의 3.5%, 900만명’ ‘영국 의회 의원 4.9%, 32명’….

이 자료들이 뭘 가리키는지 눈치챌 만한 이들은 흔치 않을 듯싶다. 그만큼 외진 곳 이야기라는 뜻이다. 모두 ‘LGBT’를 나타내는 수치들이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를 뜻하는 이 LGBT는 1992년 무렵 미국 언론이 쓰고부터 국제사회에서 굳어진 용어지만 우리한테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핵전쟁보다 더 위험하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요즈음 정치, 종교, 언론이 떼거리로 나서 그 LGBT를 무차별 공격하며 난리를 치고 있다. 지난 1월 말 보수언론과 소셜미디어가 LGBT 학생들을 돕던 인도네시아대학의 ‘지원그룹과 성별연구자원센터’(SGRC)를 공격하면서 논란이 일자 최고입법기관인 국민협의회 의장 줄끼플리 하산이 “인도네시아 문화와 어울리지 않는 동성애를 금지하자”며 정치판에 불을 붙였다. 곧장 연구기술고등교육장관 무하마드 나시르가 “도덕을 타락시킨 LGBT를 대학에서 몰아내겠다”고 달려들었고 문화기초교육장관 아니스 바스웨단이 “LGBT는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고 청소년들한테 위험하다”며 맞장구쳤다. 2월 들어 인도네시아율법자위원회(MUI) 의장 마루프 아민이 “종교, 문화, 도덕적으로 정상이 아닌 LGBT 인권을 외치는 단체에 무슬림 가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종교가 끼어들었다. 정부는 라인, 와츠앱,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동성애를 상징하는 이모티콘 사용을 금지했다. 인도네시아방송위원회(KPI)는 아동청소년 보호를 내걸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LGBT 추방을 결의했다. 경찰은 자까르따 도심 쩨마라호텔을 덮쳐 LGBT 워크숍을 깨뜨렸다. 그즈음 행정관료개혁장관 유디 크리스난디가 “동성애자는 공무원에 안 어울린다. 관료 자리도 못 준다”며 정부 속내를 드러냈다. 부통령 유숩 깔라는 유엔개발계획(UNDP)을 향해 “인도네시아 LGBT들한테 자금 지원을 하지 마라”고 다그쳤다. 2월 말로 접어들면서 인도네시아 정신과의사협회가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는 정신적 문제고 성전환자는 정신 질환이다”라고 거들고 나서 판을 더 어지럽혔다. 기어이 국방장관까지 나섰다. 리아미자드 리아쿠두는 “LGBT 운동은 외세가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 한 나라의 주권을 갉아먹는 교묘한 대리전”이라며 LGBT를 향해 “핵전쟁보다 더 위험하다”고 적개심을 터뜨렸다. 현재 LGBT를 향한 공세는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족자까르따에서는 성전환자들한테 종교를 가르쳐온 알파타 이슬람학교가 이슬람지하드전선(IJF) 같은 강경파들 협박으로 문을 닫았다. 경찰은 곳곳에서 LGBT를 지원하는 사회운동가들의 합법 시위를 막아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치·종교·언론들
LGBT 학생들 돕던 단체 공격
“청소년한테 위험한 비정상”
동성애 상징 이모티콘도 금지

군부와 무슬림 쪽에 기대선
위도도 대통령의 정치쇼 의심
손쉬운 소수 LGBT 제물 삼은
그의 극우민족주의 제2막 시작

어림잡아 700만 LGBT를 지닌 인도네시아는 1982년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게이 권리를 내세운 단체들이 등장했고 1993년부터 동성애를 합법으로 인정해왔다. 샤리아(이슬람법)를 통해 2014년부터 동성애자를 징역형과 태형으로 다스리는 아쩨나 수마뜨라 남부 빨렘방을 빼고 나면 그렇다는 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03년 동성애 불법화 시도가 있긴 했지만 의회에서 부결된 뒤 여태껏 법적 논란만큼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헌법에 성적 자유를 명시했다거나 형법이 LGBT를 보호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사회법과 달리 이슬람 관습법은 여전히 LGBT를 중범죄로 낙인찍고 있다. 흔히 동성애자들이 “입 닥치면 안전하다”고 말해왔듯이 인도네시아 LGBT는 공포 속의 자유를 누려온 셈이다.

무슬림 사회 가운데 가장 관용적이고 온건한 문화를 지녔다고 자타가 인정해온 인도네시아지만 LGBT로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80%에 이르는 시민이 동성애자와 이웃하기를 꺼리고(2012년 인도네시아조사사회) 오직 3% 시민이 LGBT를 수용한다(2013년 퓨리서치센터)는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LGBT는 ‘그 밖’ 사람들로 차별받아왔다. 그 LGBT를 부르는 말부터가 그렇다. 성전환자를 뜻하는 ‘와리아’나 레즈비언을 가리키는 ‘레스비’처럼 개념을 딴 말도 없진 않지만 흔히 게이는 여자 같은 사내니 여자 흉내를 내는 자란 뜻을 지닌 ‘번쫑’이나 ‘반찌’ 같은 말로 얕잡아 불러왔다. 으레 그 차별은 폭력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마다 1천여 건에 이르는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LGBT를 괴롭혀 왔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엔 동성애자 3명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그동안 LGBT 증오살해로 악명을 떨쳐온 중남미나 중동처럼 이제 인도네시아에서도 성적 정체성에 따른 선택을 놓고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LGBT는 매우 약한 소수들로 사회와 가족들한테도 차별받아 왔다. 모두가 LGBT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무하마드 누르코이론의 외침은 광기에 묻혀 울림이 없다. 인권단체들이 대통령 조꼬 위도도한테 공개편지까지 날렸으나 한마디 대꾸도 없다. 두 달 가까이 난리를 치고 있지만 위도도는 꿈쩍도 않는다.

위도도의 정치쇼를 의심하는 까닭이다. 위도도는 독자적 세력 없이 메가와띠 수까르노 전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투쟁당에 올라타서 2014년 말 대통령이 되었다. 당 안팎으로 지지 세력이 필요했던 위도도는 자까르따 시장 시절 뒤를 받쳐준 시민사회 대신 전통적 두 권력 축인 군부와 무슬림 쪽에 손을 내밀었다. 위도도는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불법 고기잡이 박멸을 내걸고 인도네시아 수역에서 붙잡은 베트남 어선 폭파 장면을 생중계로 내보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언론은 툭하면 불법 외국어선 폭파 장면을 실어 날랐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의 주권’을 앞세운 정치쇼 제1막 1장이 올랐다. 위도도는 2015년 1월부터 네덜란드 사람을 비롯한 외국인 사형수들을 줄줄이 총살하면서 한 해 내내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인도네시아의 법치’를 내건 제1막 2장이 흘러갔다. 이제 위도도가 자까르따 시장 시절 풍겼던 민주 챔피언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고약한 민족주의가 똬리를 틀었다.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반외세니 사형은 군부와 무슬림 세력들이 들고 다녔던 극우 민족주의의 상징이자 무기였다. 그 두 권력이 1965~1966년 사이 빨갱이 박멸을 내걸고 50만~300만 시민을 학살했던 주범이다. 위도도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군부와 무슬림 세력들 말발이 세진 건 우연이 아니었다.

위도도의 의도는 무엇인가

2016년 들면서 위도도는 제2막이 필요했다. 이번 LGBT 공격을 눈여겨보는 까닭이다. LGBT를 쪼아대는 장관이란 자들 말 속에는 “인도네시아 문화” “외국과 다른 문화” “외국의 대리전” 같은 공통 핵심어가 숨어 있다. 본질적으로 제1막과 똑같은 민족주의를 바탕에 깔고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내건 제2막 1장이 올랐다는 뜻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던 제1막에 비해 제2막에서는 국내로 눈길을 돌려 아주 손쉬운 상대인 소수 LGBT를 제물로 삼았다는 게 다를 뿐이다. 제2막 1장이 어디로 튈지 장담할 순 없지만 제2막 2장의 결말은 말할 수 있다. 만약 소수 박해를 바탕에 깐 정치쇼를 이쯤에서 접지 않는다면 그 주인공은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이게 현대극의 기본 얼개다. 이게 극우 민족주의가 시민사회 저항 앞에 무릎 꿇었던 인도네시아 현대사이기도 하다.

1998년 수하르또 독재를 쫓아내고부터 요즘처럼 정치, 종교, 언론이 대놓고 소수를 짓밟은 적은 없었다. 그사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서로 눈치를 보고 언론이 대거리하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작동해왔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치가 무너졌을 때 인도네시아에는 사회적 광기를 막을 방법이나 제도란 게 없다. 인도네시아의 오늘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까닭이다.

※ 필자의 요청으로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6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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