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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검은 재벌들 손에서 자까르따의 자유를

등록 2016-04-08 19:53수정 2016-04-09 09:35

수하르또를 비판하다 감옥살이를 한 첫 기자였던 아하맛 따우픽이 내년 2월 예정된 자까르따 주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은 3월13일 열린 주지사 선거 공식 출정식. 정문태 제공
수하르또를 비판하다 감옥살이를 한 첫 기자였던 아하맛 따우픽이 내년 2월 예정된 자까르따 주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은 3월13일 열린 주지사 선거 공식 출정식. 정문태 제공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66) ‘뗌뽀’ 기자 아하맛 따우픽
총선을 코앞에 둔 서울발 뉴스들이 참 재미없다. 정책도 이념도 또렷하지 않은 정당들이 뒤죽박죽 날뛰는 선거판이 누구를 위한 건지, 그 나물에 그 밥인 그 얼굴들한테 또 대표선수 자리를 맡겨야 하는 건지, 썩은 내가 풀풀 나는 정치판을 짜주는 투표가 과연 시민의 의무라고 우기는 게 옳은 건지…. 그렇다고 유효기간이 끝난 이런 선거제도를 마다하자니 달리 뾰족한 수도 없고, 그래서 심사만 더 뒤숭숭할 수밖에. 하기야 이런 게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서울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여기 자까르따도 방콕도 마닐라도 선거 때마다 딱 그 짝이니, 아시아적 현상쯤으로 볼 만도 하다.

선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내 친구를 소개해 올릴까 싶다. 아하맛 따우픽이라는 인도네시아판 몽상가가 있다. 아주 바쁜 친구다. 직업은 기자인데 변호사 노릇도 하고 사회운동판에도 열심히 뛰어다닌다. 말하자면 싸움꾼으로 타고난 팔자다. 따우픽은 반둥이슬람대학에서 법을 공부한 뒤 1990년 <뗌뽀>라고 자유언론투쟁사에 빛나는 기록을 남긴 시사주간지 기자가 되었다. 근데 신참 딱지를 뗄 무렵인 1994년 밥줄이 끊겼다. 수하르또 정부의 옛 동독 군함 구입 비리를 폭로한 뗌뽀가 1982년에 이어 또 폐간당하고 말았으니.

‘독립기자동맹’ 이끈 <뗌뽀> 기자
수하르또 비판하다 2년 감옥살이
감옥 동료 동티모르 전 대통령 편지
아들 기저귀에 숨겨 세상 알리기도

군·경찰 낀 재벌 비리 폭로로 고초
자까르따 주지사 선거 출마 선언
“어떤 자금도 절대 받지 않는다”
‘자까르따를 시민들 손에’ 정치 실험

특종 때마다 몰래 선 달고 다리 놔줘

그로부터 따우픽은 전국 기자들을 묶어 그 유명한 아지(AJI·독립기자동맹)를 만들어냈다. 인도네시아 현대사에 비로소 언론자유를 외치는 조직이 떴고 그게 수하르또한테는 눈엣가시로 박혔다. 이듬해인 1995년 따우픽은 아지가 찍어내던 <인더펜던>에 수하르또의 임기 연장과 부정축재를 대놓고 깠다. 그날로 잡혀가서 3년형을 받았다. 따우픽은 감옥 가기 9일 전에 태어난 둘째 아들 이름을 아예 아지(Muhammad Khatami Aji)로 지어 자유언론투쟁의 대물림을 선언했다. 그 아지란 놈은 나자마자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했다. 세계 최연소 밀령이 되었다. 따우픽은 아내가 면회 때마다 데리고 다닌 아지의 기저귀 속에 감방 동료였던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 전 대통령 편지를 숨겨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야 밝힐 수 있지만 그게 바로 감방에서 염력으로 동티모르 무장독립투쟁전선을 지휘했다던 샤나나 전설의 한 밑바탕이었다.

따우픽과 내 인연을 잠깐 짚자면 수하르또 독재가 마지막 광기를 부리던 1998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년쯤 전 감옥에서 풀려난 따우픽은 밥벌이를 고민했고, 나는 마침 반중국계 폭동을 취재하면서 현장 도우미를 찾고 있었다. 알음알이로 따우픽을 소개받았지만 정작 둘레에선 말리는 친구들이 적잖았다. 따우픽이 2년 만에 가석방되었으나 노려보는 눈들이 많아 같이 일하기 만만찮을 것이라고들. 그럴수록 나는 오히려 더 큰 호기심을 느꼈다. 그 시절 수하르또가 누구냐면 박정희, 마르코스, 리콴유와 호형호제했던 아시아 독재반공전선 앞잡이 아니었던가. 그런 수하르또를 까고 감옥살이를 한 첫 기자가 따우픽이었으니.

따우픽은 첫 만남에서부터 허당으로 다가왔다. 도무지 심각한 구석이 없었다. 폭동 현장에서도 “될 대로 되겠지”를 입에 달고 다녔다. 근데 결과가 늘 괜찮았던 걸 보면 서로 죽이 맞았던 셈이다. 그해 5월 수하르또가 쫓겨나고 뗌뽀는 복간되었다. 따우픽은 다시 회사로 돌아갔지만 그 뒤로도 내가 인도네시아를 취재할 때마다 든든히 뒤를 받쳐주었다. 그동안 내가 샤나나 옥중 인터뷰니 압둘라만 와히드 전 대통령 인터뷰니 자유아쩨운동(GAM) 취재 같은 이른바 특종들을 때릴 때마다 몰래 선을 달고 다리를 놓아준 건 모두 따우픽이었다. 그이가 없었다면 내 인도네시아 취재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랬던 따우픽이 지난 3월13일 일을 저질렀다. 내년 2월로 잡힌 자까르따 주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밤방(뗌뽀 사장)한테도 말 안 했다면서?”

“뗌뽀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근데, 언론이 도와줄 줄 알았더니 <꼼빠스>가 탐탁잖게 때렸던데?”

“그쪽이야 본디 아혹(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 현 자까르따 주지사 별명) 편이니까.”

“제목을 ‘부패근절위원회(KPK) 위원장 떨어진 따우픽, 이번에는 자까르따 주지사 출마 선언’으로 뽑았더라.”

“약삭빠르지. 기득권 지닌 놈들 태도란 게.”

따우픽은 2015년 정부의 독립기구인 부패근절위원회(KPK) 위원장 최종 후보에 올랐다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한테 거부당한 적이 있다. 그게 대통령 아들이 개입한 부패 사건을 따우픽이 건드렸던 탓이란 건 알 만한 이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걸 놓고 최대 보수 일간지 꼼빠스가 마치 따우픽이 그 자리를 탐냈다가 떨어진 것처럼 못된 제목을 달았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그 부패근절위원장 자리란 건 선거판도 아니며 애초 따우픽도 모르게 벌어졌던 일이다. 부패근절위원회 위원을 가리는 심사위원회가 시민사회에서 후보자를 뽑아 대통령한테 추천하면 대통령이 결정한 후보를 의회(DPR)가 최종 승인하는 식이다. 따우픽이 바란들 나설 수도 없는 자리고 더구나 떨어지고 말고 할 일도 없는 구조다. 따우픽을 두려워했던 유도요노가 거부했을 뿐이다.

부정부패란 단어는 따우픽의 상징이다. 물론 그 박멸을 말한다. 이번 선거 출마도 부정부패 척결이 본질이다. 따우픽은 이미 부정부패 저격수로 이름을 날려 왔다. 2003년 따우픽은 군과 경찰을 끼고 막대한 부를 쌓은 재벌 또미 위나따의 따나아방 섬유시장 화재 개입 가능성을 기사로 날려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뗌뽀 본사가 공격받았을 뿐 아니라 수백억원짜리 소송까지 걸려 회사를 거덜낼 뻔했지만 2005년 대법원이 뗌뽀 손을 들어주면서 마무리된 사건이었다. 그 일은 자유언론투쟁이 자본을 겨냥했던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또 최근 따우픽은 전 중소기업협동장관 시아리프 하산의 아들 부정부패 사건에서 누명을 뒤집어썼던 사무실 직원을 살려내기도 했다. 따우픽이 그 직원의 변호사로 나섰던 부정부패 사건은 결국 장관 아들의 감옥행으로 끝나면서 시민사회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6월까지 53만2500명 서명받아야

부정부패 박멸, 이게 바로 자까르따 주지사 후보 따우픽과 사회운동가 출신 부지사 후보 무찌따히드 하셈이 터뜨린 선전포고였다. 따우픽은 ‘자까르따를 시민들한테 되돌려주자’는 선거운동 캠페인이 한마디로 “검은 재벌들로부터 자까르따의 자유를 뜻한다”고 덧붙였다. 그이는 “시민 눈으로 보면 모든 문제의 뿌리가 정치판과 자본의 부정부패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뜻은 통하지만 고민이 없지는 않다. 정당 없이 뛰어든 따우픽은 선거법에 따라 자까르따 유권자의 7.5%인 53만2500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야 하는 일이 남았다. 6월 목표로 시동은 걸었지만 현실이 녹록잖다. 그 수를 채우려니 돈이 문제다. 모든 걸 자원봉사로 때우지만 주민증 복사비와 서류 양식만 따져도 1인당 1만루피아, 한국돈으로 한 1천원쯤이 든다. 서명받는 데만도 5억원이 든다는 뜻이다. “어떤 자금도 절대 받지 않는다. 시민이 제 손으로 서명을 만들어내는 게 이번 시민정치 실험의 고갱이다. 내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래야 시민정치의 다음이 있다.” 따우픽은 20년 전이나 이제나 여전하다. “될 대로 되겠지”를 늘어놓는다. 그렇게 되려고 정당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돈줄을 마다하며 외로운 독립후보로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따우픽한테는 다음 목표가 벌써 나와 있다.

“가난한 시민의 정치 권리를 원천적으로 틀어막는 그 7.5% 서명의 불법성을 헌법재판소로 끌고 간다. 이 선거법이 시민을 무시해온 정책의 본보기다.”

시민정치를 살려보겠다는 따우픽의 바람이 얼마나 먹힐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자까르따에서 시민의 이름으로 새로운 정치 실험이 시작된 것만큼은 틀림없다. 지금 자까르따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신한 한 몽상가의 도전을 바라보고 있다.

※ 필자의 요청으로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6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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