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금식월(라마단)의 종료를 나흘 앞둔 지난 1일 밤(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중심가의 한 고급 식당에 무장괴한들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들이닥쳤다. 인질 20명과 범인 6명, 경찰관 2명 등 모두 28명이 숨진 이날 테러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공격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어 3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번화가에서도 두 차례 자살폭탄 테러가 벌어져 최소 83명이 숨졌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전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 등 무고한 민간인들이었다. 범인들이 이슬람권에서 금욕과 자선을 강조하는 라마단 기간에, 그것도 이슬람 안식일인 금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아침에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겨냥한 것은 테러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는 이번 테러 모두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방글라데시 테러 때엔 자체 뉴스미디어 <아마크>에 인질 살해 현장의 끔찍한 사진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일 “상대적으로 이슬람급진주의가 약했던 방글라데시에서 이슬람국가가 지하드 동조자들을 확보했다는 징조”라고 분석했다.
2014년 6월 이라크 제2도시 모술에서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한 이슬람국가는 시리아 내전을 틈타 급속히 세력을 넓혀왔다. 이슬람국가는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방 연합군의 적극적인 무력 개입으로 세력이 급속히 위축됐다. 올해 초 서방 연합군은 “이슬람국가가 핵심 근거지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만 전성기에 견줘 각각 40%와 20%의 영토를 잃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이슬람국가는 중동지역 바깥에서 무장공격에 취약한 ‘소프트 타깃’을 겨냥한 무차별 테러를 확산시키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대상 지역도 중동에서 가까운 유럽뿐 아니라 북미와 아시아 등 세계 전역으로 넓어지는 모양새다. <뉴욕 타임스>는 2일 “지금까지 이라크와 시리아 바깥에서 이슬람국가가 계획하거나 그 영향을 받은 집단의 테러로 숨진 희생자가 120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방글라데시 테러는 그동안 중동과 유럽에 집중되던 테러가 동아시아로 ‘동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불러일으켰다. 또 유럽에서 무차별 테러를 벌인 것과 비교해 볼 때, 이슬람권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외국인만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번 방글라데시 테러가 중동 바깥 지역에서 이슬람국가가 벌이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 유형으로 자리잡을지 우려되고 있다.
이슬람국가는 건국 후 지난 2년간 중동과 북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로도 세력을 확장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국가는 건국 2주년인 지난 6월29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현재 실질적인 거점인 시리아와 이라크를 포함해 세계 12개국에 사실상 본부 또는 지부를 두고 있으며 7개국에는 비밀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다고 자신들의 국제조직도를 공개했다. 이 조직도를 보면, 시리아와 이라크를 ‘주요 관리국’으로 중심에 놓고, 이어 ‘중간 관리국’(10개국), ‘비밀부대 주둔국’ (7개국) 등 3가지로 나눴다. 지난해 11월과 최근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 터키, 방글라데시는 모두 ‘비밀부대 주둔국’으로 분류됐다. 이로써 서쪽 프랑스부터 동쪽 필리핀까지 거대한 ‘이슬람국가 벨트’가 가로축으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자국 내 테러 사건들을 “정치적 반대파의 소행 또는 국가 혼란을 노린 국제 음모”라고 주장하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의 관련성을 부인해왔다. 아사두자만 칸 내무장관은 3일 <아에프페>(AFP) 통신에 “이번 테러범들은 (방글라데시 자생 조직인) ‘자마툴 무자히딘 방글라데시’(JMB·제이엠비) 조직원들이며, 이슬람국가와는 연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슬람국가의 선전 기관지 <다비크>는 “제이엠비가 방글라데시에서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는 유일한 지하디스트이다”라고 공인했다.
방글라데시는 인구 1억6000만명의 대다수가 수니파 무슬림으로, 이슬람국가가 신입 조직원을 모집하거나 대리 테러를 꾸미기에 좋은 환경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슬람국가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무슬림국가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7명이 숨진 동시다발 테러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