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방콕에서 7일 선거관리 당국자가 유권자들 줄을 세우고 있다. 이날 타이에서는 군부 주도 헌법개정안 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방콕/AFP 연합뉴스
군부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타이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 결과 통과됐다.
타이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밤 개표율 91% 기준으로 찬성 61.5% 대 반대 38.44%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투표율 55%로 동북부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고 타이 선관위는 밝혔다.
이날 타이 전국의 투표소 9만4000곳에서는 군부가 작성을 주도한 헌법개정안에 찬성하는지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국민투표에서는 당분간 군부가 사실상 모든 의원들을 지명하는 상원이 하원의 총리 선출에 관여하는 데 찬성하는지 여부도 물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58%가 찬성표를 던져 반대 42%보다 많아 통과됐다고 타이 선관위는 밝혔다.
헌법개정안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올해 88살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최고 군정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에 자문해 앞으로 5년 동안 상원의원 250명을 모두 지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자문 형식을 취했지만, 군부가 상원의원을 모두 지명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며, 상원의원 중 6명은 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 경찰청장 등 군경 수뇌부가 맡도록 되어 있다. 5년 뒤에도 상원의원 200명은 국민이 뽑는 게 아니라 전문가단체들이 지명해서 채운다.
이번 개정안 이전의 마지막 헌법인 2007년 개정 헌법에서 상원 150명 중 절반은 국민이 뽑도록 한 것과 비교해보면 큰 후퇴다. 타이 군부는 2014년 5월 잉락 친나왓 전 총리를 몰아낸 쿠데타를 일으킨 뒤 2007년 개정 헌법의 효력을 정지했다.
개정안은 국민이 뽑은 하원의원이 아닌 사람도 총리가 될 수 있게 했다. 이전에는 총리를 하원의원 중에서 뽑게 돼 있었다. 사법부에서도 군의 입김은 커진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2명을 군 출신에서 뽑게 돼 있다. 개정안에는 쿠데타 뒤 군이 취한 모든 조처는 적법하다는 규정처럼 쿠데타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밖에도 “도덕적 기준” 또는 “명백한 정직성”이 없다는 모호한 이유를 들어 의원 10% 서명만으로 총리의 탄핵 절차를 개시할 수 있는 규정도 들어 있다.
타이는 2001년 탁신 총리가 집권한 이후 탁신 대 군부를 중심으로 한 대립이 계속돼왔다. 타이 군이 2006년 쿠데타로 탁신 총리를 축출한 뒤에도 선거에서는 탁신의 여동생 잉락을 비롯해 탁신계가 계속 승리했다. 타이 동북부 농촌을 중심으로 탁신 정권이 펼쳤던 농촌과 빈곤층에 대한 각종 복지 프로그램의 호응이 컸기 때문이다.
군부는 이번 헌법 개정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탁신 전 총리의 프아타이당뿐만 아니라 프아타이당에 비판적인 민주당도 반대했다. 탁신 전 총리 축출 뒤 총리에 올랐던 아피싯 폼차치아 전 총리도 이번 헌법 개정안에 대해서 반대해왔다.
지난해 25년 만에 자유 총선을 실시했으나 군부의 광범한 영향력이 여전한 미얀마도 타이의 개헌안을 비판했다. 미얀마 국영 신문인 <미얀마 알린 데일리>는 사설에서 “만약 타이에서 헌법개정안이 통과되면 타이의 민주주의는 수준 이하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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