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의 한 교회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소식을 전한 영국 <비비시>(BBC) 방송의 인터넷 홈페이지 일부. 〈BBC〉 웹사이트 갈무리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한 교회가 설치한 ‘한국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현지 일본 교민단체가 ‘인종 차별’이라며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호주 시드니 교외의 애쉬필드 유나이팅 교회가 지난 8월 건물 바깥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 일본인 로비 그룹이 호주 인권위원회에 이 동상을 철거해달라는 소청을 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21일 보도했다. ‘호주-일본 커뮤니티 네트워크’라는 명칭의 이 단체는 청원서에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hurtful) 역사적 상징물은 지역 사회에 해로우며, 악의와 인종 차별만 낳게 될 것”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교회의 빌 크루 목사는 자신이 이 동상 설치에 동의했으며 그런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 크루 목사는 “해볼테면 해보라고 말하겠다. 이 동상은 전쟁 중에 여성들이 어떻게 당했는지에 보여주는 것이지, ‘반 일본’에 관한 게 아니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비비시 방송은 “한국의 활동가들이 2011년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 소녀상을 세우면서 한-일 양국간에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며 “현재 한국의 40개 도시뿐 아니라 미국에 7곳, 캐나다에 1곳, 그리고 호주에선 처음으로 이 교회에 소녀상이 세워졌다”고 소개했다.
일본 교민단체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문제 삼는 대신 ‘이 동상이 인종간 긴장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의 데츠히데 야마오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낸 성명에서 “우리는 단지 이 동상이 반일 시위의 상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행동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는 호주에 거주하는 자녀들의 안녕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독립적인 모임”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동상 설립을 주도한 호주 현지의 한국인 단체인 평화 소녀상 건립위원회의 비비안 박 회장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행위를 기꺼이 인정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온 세계가 진실을 알고 이런 범죄와 잔학행위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애초 이 소녀상은 시드니 도심인 스트래스필드 지역의 공원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일본인을 중심으로 1만6000여명이 반대 청원에 서명하자 지역의회가 설립을 거부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일본인 단체가 소녀상 설립에 반대하는 근거로 삼은 호주의 인종차별금지법은 “인종·피부색·혈통 등을 이유로 타인을 공격하거나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 교회와 법학 전문가들은 위안부 소녀상이 ‘인종 차별’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호주국립대의 시몬 라이스 교수는 “인종차별법이 제정된지 20년이 됐지만 이런 사건이 법정으로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설혹 이런 철거 청원이 논란거리가 되더라도 그것이 성가시고 경박한 것이라면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 목사도 변호사들이 이번 사건을 무료로 변론해주겠다고 제안했다며, “소녀상은 마땅한 제 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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