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살에 다시 정권을 잡은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곧장 나집 라작 전 총리에게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전 총리의 측근들이 수조원을 빼돌린 사실이 이미 드러난 상태여서 대대적 수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경찰관 수십명이 12일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나집 전 총리 친척의 고급 아파트를 압수수색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지난 10일 이 아파트에 총리실과 정부 로고를 새긴 밴 차량들이 50박스의 ‘버킨 핸드백’을 실어 날랐다는 여당 쪽 제보를 단서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여당 쪽은 배달된 에르메스 ‘버킨 핸드백’은 개당 가격이 20만달러(약 2억1340만원)라고 주장했다. 박스 하나에 가방 하나씩이라고 가정하면 100억원어치가 된다. 10일은 나집 전 총리가 물러나고 마하티르 총리가 취임한 날이다.
말레이시아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 아파트가 누구 것인지는 공개하기를 꺼렸다. 압수수색은 전임 정권 수사에 필요한 서류를 입수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브이 브이 아이 피(VVIP)”와 관련된 것이라며, 나집 전 총리의 부인 로스마흐 만소르를 겨냥한 수색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명품 핸드백을 무더기로 빼돌린 게 사실로 확인되면, 1986년 민중혁명으로 축출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의 ‘구두 3000켤레’와 비견될 만한 사건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2일 나집 전 총리 부부를 출국금지시켰다. 그는 일주일간 해외에서 쉬고 싶다고 밝혔으나, 이민국은 불과 몇분 만에 출국금지 사실을 공개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10일 취임 직후 한때 자신의 후계자로 여겨지던 나집 전 총리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나집 전 총리는 집권중인 2015년 불거진 1MDB 투자 펀드 사건으로 강한 의혹을 받아왔고, 이는 지난 9일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정부가 경제 개발을 명목으로 만든 투자 펀드의 대출금 130억달러(약 13조8710억원) 중 45억달러를 그의 양아들을 비롯한 측근들이 빼돌린 사건이다. 미국 법무부는 나집 전 총리로 추정되는 ‘말레이 1번 관리’의 계좌에 6억8100만달러가 송금됐으며, 주범이 그의 부인에게 300억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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