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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타밀 반군 등 실종 20만명 생사 모르는데 진상조사 시늉만”

등록 2018-10-18 19:40수정 2018-10-18 21:21

[짬] 스리랑카 인권운동가 마나퉁가 신부 등

스리랑카 네곰보에서 열린 ‘서남아시아 인권활동가 국제거점회의’에 참석한 난다나 마나퉁가(57) 신부, 바실 페르난도(74) 전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 대표,  다냐니아 자얀티(59) 스리랑카 실종자 기념회 대표(왼쪽부터) 등 스리랑카 출신 광주인권상 수상자 3명이 15일 한자리에 모였다. 5·18기념재단 제공
스리랑카 네곰보에서 열린 ‘서남아시아 인권활동가 국제거점회의’에 참석한 난다나 마나퉁가(57) 신부, 바실 페르난도(74) 전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 대표, 다냐니아 자얀티(59) 스리랑카 실종자 기념회 대표(왼쪽부터) 등 스리랑카 출신 광주인권상 수상자 3명이 15일 한자리에 모였다. 5·18기념재단 제공

“한달여 동안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죠.”

방글라데시 국립대 교수(지리학)였던 와이두자만(48)은 지난 15일 스리랑카 네곰보에서 열린 ‘서남아시아 인권활동가 국제거점회의’에서 말레이시아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부정선거로 집권한 여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쓰는 지식인이었다. 방글라데시 독재정권은 2013년 그의 에스앤에스 계정까지 조작해 재갈을 물리려고 했단다. “누군가 만든 페이스북 계정으로 날조된 글을 마치 내가 쓴 것처럼 올렸어요. 결국 정부 당국은 이 글을 빌미로 나를 체포했어요.” 그는 호사인 방글라데시 전 판사의 망명 사례도 공개했다. 호사인 판사는 2013년 11월 비밀경찰에 납치당해 야당 지도자에게 씌운 돈세탁 날조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릴 것을 종용받았지만 거부했다. 그러자 법무부 장관 등이 그의 집을 찾아 실탄이 든 총을 겨누며 협박했다. 하지만 호사인 판사는 법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정보부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던 호사인 판사는 말레이시아로 망명했다. 호사인은 이날 에스앤에스 영상통화를 통해 회의 참석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번 회의는 5·18기념재단(이하 재단)과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가 13일 2박 3일 일정으로 한 행사였다. 재단은 2016년부터 아시아 각 나라를 돌며 지역별 거점회의를 열고 있다. 올해로 20돌을 맞는 아시아인권헌장 광주선언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인권활동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이번 거점회의엔 스리랑카·인도·네팔·방글라데시·말레이시아·홍콩·한국의 인권활동가 30여 명이 참석했다. 유인례 재단 국제부장은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인권 탄압 현장 상황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와이두자만 전 방글라데시(왼쪽 앞) 국립대 교수가 자국 정부의 인권 탄압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와이두자만 전 방글라데시(왼쪽 앞) 국립대 교수가 자국 정부의 인권 탄압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회의엔 스리랑카 출신의 ‘광주인권상’ 수상자 3명이 다 참석했다. 2000년 5·18 정신계승자에게 광주인권상을 준 뒤 지금까지 스리랑카 출신 수상자가 3명이라는 점은 현지 인권상황이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특히 스리랑카의 강제실종 문제는 인종과 종교갈등뿐 아니라 정치·사회·개인적 대립 등 여러 원인이 겹쳐있다. 29년 동안 스리랑카 정부군과 소수민족인 타밀족 반군 사이에 벌어졌던 내전이 2009년 끝날 때까지 수많은 타밀족 반군들과 가족들이 희생됐다. 싱할라족 지역인 남부에선 언론인과 인권운동가들이 날조된 혐의를 신고받은 ‘정보 부대’에 끌려가 실종되기 일쑤였다. 스리랑카 인권활동가들은 “투항한 반군 쪽 사람들 가운데 6만~20만명이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에 진전이 없어 지치고 눈물만 나옵니다.”

5·18재단과 홍콩아시아인권위
13일 스리랑카서 국제거점회의
광주인권상 수상 3명 모두 참석

”새 정부 진상규명위 설치했지만
진전 없어 지치고 눈물만 나와”

2003년 광주인권상 수상자 다냐니아 자얀티(59) 스리랑카 실종자 기념회 대표는 가족 3명이 강제실종되는 아픔을 겪었다. 1987년 10월 회사 노동운동가였던 약혼자가 납치 뒤 총격을 받고 불탄 채 발견돼 충격을 받았다. 1989년 10월엔 남동생이, 이듬해 1월엔 오빠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실종됐다. 그는 1991년 실종자 추모회를 결성하는 등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점차 ‘투사’로 변신했다. 자얀티 대표는 “강제실종 문제를 증언해 줄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진상규명과 관련해 시늉만 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2015년 출범한 스리랑카 새 정부는 지난해 2월 스리랑카 강제실종진상규명위원회(OMP)를 설치했지만 진상규명엔 소극적이란다.

인도 출신 한 인권활동가가 자국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민주인사 5명의 사진이 실린 전단을 들고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인도 출신 한 인권활동가가 자국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민주인사 5명의 사진이 실린 전단을 들고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올해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난다나 마나퉁가(57) 신부는 남부지역 도시인 캔디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5년부터 캔디 인권사무소를 만들어 강제실종 가족과 고문 피해자, 성범죄 피해자들의 치유활동을 돕고 있다”고 했다. 또 고문과 내전에 반대하는 인권 네트워크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정치범 석방 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교사 출신으로 필리핀에서 상담학 석사학위를 받은 메이블 로드리고 수녀가 국가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돕고 있다. 최근엔 경제적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무슬림계 시민들이 싱할라족의 방화 테러에 노출돼 있다. 마나퉁가 신부는 “이전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강제실종 문제가 아주 근절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은 서남아시아와 한국의 인권·시민단체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 스리랑카 실종자 기념회는 재단 도움으로 네곰보에 실종자 추모탑을 세웠고, 인도 광주인권상 수상자는 상금을 받아 인권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조진태 재단 상임이사는 “거점회의 참석자 중 상당수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뿐 아니라 촛불 혁명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스리랑카 전직 대법원 판사 출신으로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 대표를 지낸 바실 페르난도(74·2001년 수상자)는 “5·18 뒤 한국은 진상조사부터 시작해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뤘다. 한국은 인권탄압 이슈가 있을 때마다 시민들이 싸운다.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 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 인권단체들도 서로 더 교류하며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곰보/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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