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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뉴질랜드 테러 충격…백인 민족주의자들은 왜 총을 드나

등록 2019-03-17 18:42수정 2019-03-17 20:06

“평범한 백인” 청년이 뉴질랜드 사상 최악 테러
“프랑스 여행하다 이민자에 대한 시각 바뀌어” 주장
‘무슬림들이 유럽 백인 문명 침탈한다’ 과대망상
반이민 정서, 인터넷 선동에 인종주의 갈수록 기승
포퓰리스트 정치가 종교·인종 간 혐오 증폭 효과도
브렌턴 태런트가 15일 모스크를 공격하러 가며 차량 안에서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한 화면에 나온 얼굴 모습. AP 연합뉴스
브렌턴 태런트가 15일 모스크를 공격하러 가며 차량 안에서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한 화면에 나온 얼굴 모습. AP 연합뉴스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친절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가득한 놀라운 곳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청년 브렌턴 태런트(28)가 지난해 10월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을 여행하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5개월도 안 돼 그는 적어도 6명의 파키스탄 출신자들을 비롯해 무슬림 50명을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살해했다.

태런트는 범행 직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저신다 아던 총리 등 뉴질랜드 정치인들에게 이메일로도 보낸 ‘선언문’에서 스스로를 “평범한 가정 출신의 평범한 백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그가 뉴질랜드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저지르면서, 백인 민족주의의 파괴력과 잔혹함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16일 알누르 모스크 앞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EPA 연합뉴스
16일 알누르 모스크 앞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EPA 연합뉴스
여행을 하면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다는 태런트는 모순되게도 여행을 통해 무슬림들에게 치명적 증오를 품게 됐다고 주장했다. 74쪽짜리 ‘선언문’에 나오거나 언론 또는 각국 정부가 확인한 것을 보면, 그는 2016년부터 프랑스·포르투갈·불가리아·헝가리·세르비아 등 동·서 유럽, 터키·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를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북한도 방문해, 양강도의 삼지연 대기념비에서 찍은 사진을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이 공개했다. 어려서 부모가 헤어지고 2010년에 아버지를 여읜 “저소득 가정의 노동자” 태런트는 암호화폐 투자로 여행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태런트는 2017년 서유럽 여행 때 이민자에 대한 시각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이민자가 너무 많아 “(토착 거주자인) 프랑스 사람들이 자주 소수자인 것처럼 보였다”고 적었다. 그해 4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슬람 과격분자의 트럭 테러로 4명이 숨진 사건에도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인디펜던트>는 그가 유럽 여행 때 극우단체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전했다. 그는 “내 정체성은 유럽인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피가 유럽인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깨달음’에 2년간 테러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경찰은 ‘외로운 늑대형’ 단독범이라고 설명했지만, 태런트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서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진 극단적 백인 민족주의다. 그의 메시지 및 범행에 쓴 총기, 방탄조끼에는 극단주의자들의 상징이 가득했다. 히틀러를 언급했고, 나치의 힘러가 쓴 태양바퀴 문양을 그려 넣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8세기에 이슬람 세력을 막아낸 프랑크왕국의 카를 마르텔, 십자군, 중세 때 오스만튀르크와 싸운 세르비아와 헝가리의 지도자들 이름을 썼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각은 무슬림에 맞서 총단결해야 한다는 백인 민족주의자들의 교리 같은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세사가인 폴 스터티번트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중세 유럽을 순전한 백인으로 땅으로 인식하고, 외부 세력과 끊임없이 충돌한 시기로 본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태런트도 “침략자들”에 맞서 “우리 땅”을 지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무슬림도 자기 땅에 살면 미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혈통에 따라 영토를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나치의 ‘피와 땅’ 슬로건과 이어지는 주장이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극단적 사상과 행동이 유기적 상승작용을 한다는 점이 드러난 것에도 있다. 개인적 전망이 밝지 않은 중하류층 청년이 인터넷을 매개로 배타적 가치관과 역사관에 빠져 잔혹한 방식으로 자기과시를 시도한다는 게 최근 극우 테러들의 공통점이다. 태런트는 미국에서 소수인종에게 총기를 난사한 사람들한테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문답 형식의 글에서 “어디에서 신념을 얻고, 조사하고, 발전시켰느냐”고 질문하고는 “물론 인터넷이다” “다른 곳에서는 진실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공격에 대한 가책은 없느냐”라고 묻고는 “아니, 더 많은 침략자들과 반역자들을 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도 무슬림들이 서구 문명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과대망상과 자신을 ‘역사적 영웅’으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에 빠져 죄책감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지도자들의 언행과 사회적 분위기도 이런 토양을 제공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디언> 칼럼니스트 제이슨 윌슨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가 공공정책에 각인돼 있다”고 비판했다. 프레이저 애닝 오스트레일리아 상원의원은 16일 기자회견에서 “무슬림 이민과 이민 정책”이 사건의 배경일 수 있다고 발언하다가 10대 소년이 달걀을 머리에 던지자 소년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무슬림 침공’을 국경장벽 설치 근거로 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인 우월주의가 문제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샬러츠빌 백인 우월주의자 난동 때도 인종주의를 분명히 비난하지 않아 비판을 샀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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