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연쇄폭탄 테러를 수사하고 있는 특별수사대가 25일 수도 콜롬보 교외에 있는 재계 거물 알하지 모하메드 이브라힘의 집 앞에 차단선을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브라힘의 아들과 며느리 등 3명은 이번 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21일 폭탄테러 직후 경찰이 급습했을 때 이 집에서도 자폭 테러가 벌어졌다. 콜롬보/로이터 연합뉴스
스리랑카의 부활절을 최악의 테러로 물들인 이들 중에 재계 거물의 아들 둘과 며느리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막대한 재산과 정·재계에 걸친 화려한 인맥을 기반으로 지역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누려온 일가가 극단적 선택으로 자신들과 타인들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사실에 스리랑카 사회는 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로이터> 통신은 피해자들과 함께 사망한 테러범 9명 가운데 3명은 향신료 수출업을 하는 재벌 알하지 모하메드 이브라힘의 아들 2명과 며느리로 확인됐다고 24일 보도했다. 테러에 나선 이브라힘의 가족은 그의 6남3녀 중 아들 인샤프와 일함, 일함의 아내다. 형 인샤프와 동생 일함은 호텔 내지 교회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사건 직후 경찰이 집을 급습했을 때 일함의 아내가 폭탄을 터뜨려 두 자녀와 경찰관 여럿과 함께 사망했다.
이브라힘은 수출업체 이샤나의 창립자로, 후추·육두구·정향을 팔아 많은 재산을 쌓고, 2016년 수출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정계에도 발이 넓어 좌파 민족주의 정당 인민해방전선의 공천으로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아버지 이브라힘의 가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국은 테러 발생 직후 그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이브라힘 일가가 어쩌다 셋이나 끔찍한 테러에 가담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외신 보도를 보면, 이브라힘 가족은 수도 콜롬보 교외에서 3층짜리 저택에 살며 기사 딸린 베엠베(BMW) 차량을 타고 다녔다. 일함의 경우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으로 이번 테러를 저지른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의 모임에 참석하고 극단주의적 사상을 표출해왔다. 하지만 구리 공장을 운영하며 직원들과 빈곤한 지역 주민들을 후하게 대해 인심을 얻은 인샤프까지 왜 테러에 뛰어들었는지가 의문을 낳고 있다.
유럽 등지에서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는 소외된 젊은이들이 가담한 경우가 많았다. 고학력자들이 나서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살림살이나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이 무더기로 나선 경우는 찾기 어렵다. 테러범들 중 압둘 라티에프 자밀 모하메드는 2006~2007년 영국 킹스턴대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가 법학을 공부했다. 루완 위제와르데네 스리랑카 국방장관은 24일 기자회견에서 “테러범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이상의 집안 출신”이라며 “이는 상당히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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